산업부 유수정 기자

[월요신문=유수정 기자] 최근 일-가정 양립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고착화되는 가운데 유통업계가 일명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 열풍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직원들의 복지향상에 앞장서고 나섰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신조어인 워라벨은 직원들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기업의 복지제도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 기본적인 환경이 뒷받침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근로자 스스로가 워라벨을 창출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인 셈이기 때문.

일반적으로 ‘야근 없는 삶’, ‘저녁이 있는 삶’ 등이 워라벨의 기본으로 치부되고는 하지만, 보다 큰 범위에서는 기업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도나 남녀 구분 없는 육아휴직 사용, 보육이나 건강에 대한 지원, 교육지원, 장기휴가 제도 등도 이에 포함된다.

문재인 정부의 근로개선 정책과 맞물려 사회 전반적으로 워라벨의 중요성이 대두된 까닭일까.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2018년도 신년사에서 하나같이 이를 언급하며 직원들을 위한 다양한 복지 지원 정책을 제시한 상황이다. 한마디로 2018년도 기업 문화의 트렌드는 워라벨이 된 셈.

롯데의 경우 여성 뿐 아니라 남성 직원들에게도 육아휴직을 의무화하고, 한 달간의 의무 육아휴직 기간 동안 통상임금의 100%를 보전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무려 1100명의 남성 직원이 육아휴직을 사용, 워라벨을 몸소 실천한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롯데는 올해 역시 다양한 복지제도를 통해 직원들에게 워라벨을 선사할 방침이다.

CJ의 경우 다양한 휴가 제도의 운영을 통해 직원들의 일-가정 양립 실현을 지원한다. 5년마다 최대 한 달간 재충전과 자기 개발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창의 휴가’ 제도를 시행 중임은 물론,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을 전후로 한 달간 ‘자녀 입학 돌봄 휴가’도 제공한다. 단축근무 역시 상황에 따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긴급 자녀 돌봄 근로시간 단축제’나 ‘임신 위험기 근로시간 단축제’가 대표적이다.

이랜드와 아모레퍼시픽, KT&G 등도 휴가 신설 및 복지제도 확대 등을 통해 직원들에게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위메프 역시 중소·중견기업으로서는 파격적인 혜택으로 워라벨 트렌드에 동참했다.

이 같은 워라벨 열풍에 있어 시행 전부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신세계였다. 일명 ‘정용진의 파격실험’으로 불리며 주 35시간 근무를 선언하고 나선 신세계의 행보에 업계의 모든 관심이 쏠렸기 때문. 일반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주 40시간(일 8시간) 근무보다 하루 1시간씩 감축된 근무시간에 진정한 워라벨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러나 막상 그 패를 까보기도 전부터 잡음이 일더니, 결국 시행 한 달이 지난 지금 곪을 대로 곪은 것이 터진 모양새다.

신세계는 지난달 1일부터 주 35시간 근무 시행에 따라 이마트의 영업시간 역시 1시간 단축하고, 근무 직원 역시 불가피한 상황이 아닐 경우 업무 지원이나 추가 근무가 불가하도록 했다.

겉으로 봐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막상 현장에서 근로하는 직원들은 “마트 현장을 무시한 처사”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근로시간 감축으로 인해 노동강도가 거세진 것은 물론, 결론적으로 임금 삭감까지 벌어졌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자 결국 하루가 멀다 하고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귀 기울이지 않은 정책의 시행은 실질적으로는 독단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시간을 감축해 동일한 업무량을 처리하라는 지시는 직원들에게 되레 해가 될 수밖에 없다. 직원들의 근무강도를 높이고, 무료봉사 가능성을 열어두며 최종적으로 임금까지 줄어드는 꼴로 인식되는 정책이 진정 직원들이 원하는 바였을까.

단순히 근무시간 단축으로 저녁이 있는 삶이 보장된다고 해서 워라벨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신세계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던 것은 아닐지, 과연 누구를 위한 워라벨이었는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