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야권의 반발 고려한 고육지책으로 보여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은 김정은 북한 노동장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제안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분수령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주일 간의 고심 끝에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뜻을 밝혔고, 야권도 북핵 폐기가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이라며 반발했다.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가능성을 열어두고 대북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윤명철 기자]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은 김정은 북한 노동장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제안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분수령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주일 간의 고심 끝에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뜻을 밝혔고, 야권은 북핵 폐기가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이라며 반발했다.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가능성을 열어두고 대북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평창의 최대 이슈, 김정은 남북정상회담 전격 제안
 
이번 평창올림픽 개막식의 최대 이슈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친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개막식 참석이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며 남북정상회담을 전격 제안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이끈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일원으로 한국을 찾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로서 실질적인 리더였다. 김 제1부부장의 평창 참석이 발표되자 전 세계는 초미의 관심을 보이며 남북관계의 전환점이 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김여정 특사를 맞아 “오늘 이 자리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남북에 거는 기대가 크다”며 “남북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하여”라고 건배사를 제안했다.
 
김여정 특사도 “빠른 시일 내에 평양에서 뵈었으면 좋겠다. 문 대통령께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님을 만나서 많은 문제에 대해 의사를 교환하면 어제가 옛날인 것처럼 빠르게 북남관계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남북정상회담을 전격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김여정 특사의 제안에 “여건을 만들어서 성사시키자”라며 즉답을 피했지만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여야 정치권은 북 측의 남북정상회담 제안에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2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에 이어 북미 대화의 물꼬도 터지길 기대한다”고 환영의 뜻을 전했다.
 
추 대표는 다만 “우리는 더 큰 책임감으로 차분하면서도 신중하게 준비해 초청에 응해야 할 것이다. 미국 등 동맹국을 설득하고, 유엔 등 국제사회의 지지 속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야 할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내비췄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김정은 정권이 남북정상회담 카드로 문재인 정권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며 국제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과연 문재인 정권이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북핵 폐기, 국제 공조에 나설 것인지 아니면 감성적인 민족공조에 빠져 한미동맹과 국제공조에 역주행 할 것인지 온 국민이 우려 섞인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길 바란다”며 경고했다.
 
문 대통령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복잡한 속내 드러내
 
문재인 대통령의 고심은 깊어졌고 일주일이 지나 복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설날 연휴 기간 중인 지난 17일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가능성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지만 마음이 급한 것 같다”며 “우리 속담으로 하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답했다. 즉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뜻을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강원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의 메인프레스센터(MPC)를 방문해 올림픽을 취재하는 국내외 언론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과 북한 간 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지금 이뤄지고 있는 남북대화가 미국과 북한과의 비핵화 대화로 이어지길 기다리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미국과 북한 간 대화가 이뤄져야 실질적인 남북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의사를 북 측에 전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19일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문 대통령께서 남북정상회담의 속도조절을 신중하게 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평가했다.
 
유승민 공동대표는 이날 오전 전북도의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뒤늦게 현실 인식을 정확하게 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미국 등 국제사회와 공조해서 최고 수준의 대북제재와 압박을 흔들림 없이 계속해야 하고 또 한미 동맹의 긴밀한 공조, 신뢰 관계로 유지해야 이 북한의 핵문제, 미사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미국도 대북 압박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지난 17일(현지시간) CBS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기를 귀기울이고 있다”라며 “우리는 지금 대화를 설득하기 위해 당근을 쓰지 않고 커다란 채찍을 쓰고 있다. 그들이 이런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압박했다.
 
여의도 정치권의 한 인사는 “문재인 대통령은 실제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전까지 미국과 북한의 대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북핵이 정상회담의 의제가 되지 않는다면 미국과 보수 야권의 반발이 심각할 것이기에 북한에 공을 넌지시 넘긴 것”이라며 “북한이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북 측이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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