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월요신문=장혜원 기자] 서지현 검사의 고백으로 촉발된 미투 바람이 문화‧예술계를 넘어 대학가에서도 거세게 불고 있다.

최근 각 대학 온라인 익명 게시판 ‘대나무숲’에는 일부 교수들에 대한 성추행 폭로 글이 잇따라 게시되고 있다. 특히 문화‧예술 전공 학생들의 피해 글이 여럿 등장했다.

한 예술대 대나무숲에는 지난해 1월 주연으로 참여한 학과 공연에서 교수에게 원치 않는 누드를 강요받았다고 주장하는 졸업생 A씨의 글이 올라왔다.

A씨의 수차례 ‘싫다’는 거부 의사에도 불구, 해당 교수는 배우로서 해야 한다며 계속 알몸 출연을 강요했다고 한다. 이후 샤워가운을 입는 것으로 절충됐으나 당사자와 의논도 없이 촬영 당일 옷을 벗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장치를 설치하도록 결정했다는 소식에 A씨는 작품에 빠지기로 했다.

A씨는 “그저 옷을 벗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촬영 당일까지 나와 한마디 상의 없이 결정됐다. 작품적으로도 왜 그 장면이 필요한지 누구도 나를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다”며 “‘배우의 마인드가 안됐다’ ‘한심하다’ 등의 말들이 가슴 속 상처로 여전히 남아있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예술대 대나무숲에는 10년 전 겪었던 동성 간 성추행을 폭로하는 글이 등장했다.

남성이라고 밝힌 게시자 B씨는 이 학교 남성 교수에게 개인 음악 지도를 받다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교수가 힘으로 B씨를 제압하고 키스를 시도했다는 내용이다. B씨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 같은 말도 안 되는 피해자가 일어나질 않길 바란다”고 남겼다.

D대학의 한 단과대학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해당 학과 교수에게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 학교 졸업생으로 추정되는 익명의 글 작성자는 “졸업을 앞두고 힘들었던 시절 교수님이 방에서 껴안고 뽀뽀하려 (해서) 겨우 빠져나와 떨면서 도서관으로 향했다”면서 “‘여행 가자’ ‘애인 하자’ 등 문자 보내고 동기들에 비해 졸업이 늦은 것을 위로해 주는 척하면서 성추행하던 교수가 아직 교직에 몸담고 있다는 게 황당하다”고 고발했다.

S대학 졸업 예정자 C씨는 해당 학교 대나무숲에 “강사가 학생들 성희롱하듯 말하고 우리를 애인, 노예쯤으로 생각하는 인권을 무시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며 “어디를 가든 우리는 꿈을 가진 사람이지 권력에 놀아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미투 바람이 대학가를 휩쓸면서 대학 내에서는 성범죄를 일으킨 교수들의 사례를 취합하고 공동성명을 내는 등 집단 대응에 나서고 있다.

서울예대 사진전공학회는 이 학교 교수였던 배병우 사진작가에게 성적 피해를 본 학생들의 제보를 받아 사실관계를 조사 중이다. 2015년 정년퇴직한 배 작가는 ‘소나무 시리즈’로 잘 알려졌다.

학회는 “최근 불거진 배 전 교수의 부적절한 행적과 관련해 사실 조사 중이며 제보를 취합해 피해 사실을 학교 측에 전달할 예정”이라며 “이에 따른 대학본부의 공식적 입장을 예의주시하고 학생들 피해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배우 겸 교수인 조민기의 제자 성추행 논란이 불거진 청주대학교 연극학과에서도 움직임이 일었다.

청주대 재학생·졸업생 38명은 지난 24일 공동성명을 통해 “피해 사실을 암묵적으로 묵인하고 등한시했던 지난 날의 우리들은 모두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며 “다시는 침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화여대 학보사는 미투 운동 제보를 받아 지면에 실을 예정이다.

학보사는 "균열을 더 큰 변화로 끌어내고자 경험을 모으려 한다. 같은 피해자에겐 큰 용기와 위로가, 가해자에겐 엄중한 경고와 위협이 될 것"이라며 힘을 보태달라고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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