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밀양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갈등... "GIS기술없어"vs "충분히 가능한 기술"

<한국전력공사 이전기념식에서 퍼포먼스를 벌이는 밀양송전탑대책위/사진출처=뉴시스>


[월요신문=김은수 기자]“밀양송접탑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 있어요. 그걸 한전에서 묵살한 겁니다”

완공된 밀양송전탑을 애초에 지을 필요가 없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기술 하나로 해결 할 수 있었던 문제를 한국전력공사에서 밀어붙여 엉뚱한 예산 4600억원이 쓰였다는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밀양송전탑 설립을 놓고 제기되는 한국전력공사 측과 밀양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주민들의 갈등 내막을 살펴봤다. 

◇한전 없다던 GIS기술...국내 업체 기술로 가능? 

정부와 한국전력공사는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내륙으로 보내기 위해 지난 2008년 8월부터 밀양 30개 마을에 걸쳐 69개의 송전탑을 세우기로 계획하고 마을 주민들설득에 나섰다. 

내 자식 전자파로 병 걸려 보낼 수 없다는 밀양 부모들과 하루 아침에 파괴될 공동체로 헛헛한 마음 달랠 길 없는 밀양 노인들은 이에 대해 극구 반대하고 나섰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국회 산업통상위 위임으로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2015년 6월 전문가협의체가 40일 동안 밀양 주민들과 한국전력공사 측의 의견을 조율키로 했다. 

당시 협의체의 주요 핵심 논의 대상은 '8000A급 3상 일괄형 가스절연개폐장치(GIS)'의 설치 가능 여부였다. 

밀양대책위원회 주민들은 이 기술을 보유한 한 기업체를 찾아내 제시하고 이 기술이 밀양송전탑 건설을 대체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해당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소개한 기업이 나온 것이다. 한 기업 카달로그에는 "GIS는 25.8kV에서 800kV의 전압이 8000A까지 가능한 3상 일괄형을 활용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실제 본지 확인 결과 충분히 가능했던 사항으로 표기돼 있다. 그러나 이를 놓고 한국전력공사 측은 주민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전력공사는 카달로그에 명시된 내용에 대해 “일부 과장된 표현이 포함되어 있어 현재 사용중인 카달로그에는 오류사항을 수정했다는 기업의 공문을 받았다”면서 “결론적으로 국내에서도, 세계적으로도 8000A급 3상 일괄형 GIS는 개발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한국전력공사는 밀양송전탑 설치 계획을 밀어붙였고 결국 2014년 9월 밀양송전탑이 완공됐다. 

문제는 이후 드러났다. 최근 밀양송전탑반대 대책위의 한 관계자가 구글링을 통해 입수한 '한전표준규격서'가 발견된 것이다. 

'한전표준규격서'는 한전측이 기업으로부터 어떤 기술이나 제품을 들여올 지에 대한 기준을 보여주는 구매 안내서로 해당 문건에는 협의체에서 "없다"고 주장한 '8000A급 3상 일괄형 GIS'장치가 정확히 기재돼 있었던 것이다. 

기자가 확인해 본 결과 문서 아래쪽의 '제품 구조'규격을 보면 "3상 분리형 또는 '일괄형'을 표준으로 하고, 별도로 지정하지 않는 한 제작자의 표준에 따른다"고 명시돼 있다. 

이 문서는 89년, 2016년, 2017년 총 세 차례에 걸쳐 개정됐다. 당시 협의체 논의 때 이 문서는 단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었다.

이를 놓고 대책위 관계자는 "해당 보고서에 2013년 협의체 구성 당시 8000A가 나와있지 않더라도 색인의 목록에다가 개정된 부분을 기입해 알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비포 애프터로 전과후를 정확히 밝히고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는게 공기업의 의무 아니냐"고 한전측의 안일한 태도를 꼬집었다. 

◇전문가 "GIS기술 구현 어려운 기술 아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전은 '8000A급 3상 일괄형 GIS'가 '국내 어디에서도','세계 어디에서도'개발된 적 없는 기술이라고 거듭 강조해왔다. 실현하기 어려운 고도의 기술이라는게 한전 측 주장이다. 

그러나 해당분야의 전문가의 주장은 다르다. 

업계 한 전문가는 "한전쪽에서 그렇게 말한 것에 의문이 있다. (일반인들이) 전류값이 4000A에서 8000A로 훅 늘어나니까 뭔가 엄청나게 획기적인 기술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아니다"라면서 "전류값은 단순히 열을 발생시키는 개념이기 때문에 열 발산으로 인해 주변 온도가 높아지는 것만 조절해주면 되는 간단한 기술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계자는 "다른 기업에서도 그 기술을 그때 당시 보유한 것으로 안다. 하이테크적인 특허가 필요한게 아니라 그냥 묶으면 된다. 단지 열이 발생하는 것에 대비해 적절한 쿨링 시스템만 갖추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위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논란 가중될까 

한국전력 측의 주장과 달리 기술 보유가 가능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밀양 송전탑 인근 지역의 주민들의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밀양송전탑반대 대책위원회'는 지난 7일 한전이 공사과정에서 허위자료를 제출해 공사를 강행했다고 주장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책위는 이날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협의체 쟁점으로 부각될 당시 몇몇 업체가 8000A급 GIS를 납품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면서 "(협의체당시) 한전의 주장을 짧은 기간에 반박할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소수의 전문가만 알고 있는 정보인데다 협의체에는 업체 관계자, 실무자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즉, 협의체 구성 당시 마을 주민들이 이 업계의 전문가인 한전 측의 일방적 주장에 반박하느라 40일의 시간을 전부 할애했다는 뜻이다. 

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주민이 제시된 안으로 갔다면 600억원이 드는 공사를 한전이 밀양송전탑으로 5200억원짜리 공사로 만들었다"면서 울분을 토로했다.

한편 밀양지역 주민들의 성토에도 불구하고 한전 측은 "이미 끝난 일이다"면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당사에서 작성한 표준구매규격서 조차 파악을 하지 못해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면서 "이 건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