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형사처벌 허점 악용해 ‘인사관행’ 치부, 의혹 철저히 수사해야

[월요신문=임민희 기자]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의 낙마로 금융계가 들썩이고 있다. 최 원장의 사임으로 금융권 채용비리 조사가 차질을 빚는 게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최 원장 낙마배경과 시기를 놓고 하나금융지주 배후설 등 각종 추측이 난무하는 모습이다.

최 전 원장은 지난해 9월 최초의 민간출신 금감원장으로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취임했지만 6개월 만에 채용비리 의혹으로 불명예 퇴진하는 ‘최단명 금감원장’이 됐다. 금융권 채용비리 조사를 진두지휘했던 그가 결국엔 자신도 ‘채용비리의 덫’에 걸려 인생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된 셈이다.

최 전 원장은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진 후 줄곧 혐의를 부인해 왔다. 특히 “인사추천은 관행이었다”는 최 전 원장의 해명은 오히려 성난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는 하나금융 사장으로 재직하던 2013년 하나은행 신입사원 채용 때 대학동기 아들(L씨)의 채용을 청탁한 의혹을 받고 있다.

L씨가 점수미달에도 합격해 현재 KEB하나은행 모 지점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 전 원장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내규에도 없는 ‘임직원 추천 채용’을 관행이라고 밝힌 하나은행의 해명 역시 일반 지원자들 입장에선 ‘특혜’로 비춰지고 있다. 최 전 원장은 2016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이사 재직시절에도 경영본부장 교체 문제로 채용잡음이 불거져 곤혹을 치른 전례가 있다.

금융계는 최 전 원장의 낙마사실에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과거 있었던 채용비리 의혹이 하필 이 시점에 터진데 대해 강한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조차도 “제보가 하나은행 내부가 아니면 확인하기 어려운 내용인 만큼 해당 경영진들도 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언론제보 배후로 하나금융을 지목했다.

금감원은 하나금융 지배구조 검사를 통해 회장 선임절차의 적정성 등을 들여다볼 예정이었다. 하나금융은 오는 23일 정기 주주총회을 열어 김정태 회장의 3연임을 확정지을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하나금융 저격수’로 나선 최 전 원장에 대한 응징 또는 김정태 회장의 3연임을 위한 여론물타기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하나금융 측은 말도 안되는 억측이라며 세간의 의혹을 일축했다.

최 전 원장은 금감원 수장자리에 오르기 전까지 하나금융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그는 2010년 10월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을 맡으면서 하나금융과 첫 인연을 맺은 후 지주 사장과 고문을 거쳐 서울시향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하나금융은 서울시향의 최대 후원사다.

하지만 최 전 원장이 금감원장을 맡은 후 하나금융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졌다. 최 전 원장은 최종구 위원장과 함께 지주회장들의 ‘셀프연임’을 지적하고 지배구조 개선을 압박하면서 김정태 회장의 3연임에 제동을 걸었다. 지난 2월에는 금감원이 하나금융에 회장 선임절차 중단을 요청했지만 하나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김 회장에 대한 재선임을 강행해 마찰을 빚었다.

은행권 채용비리에 이어 금융회사를 제대로 감시·감독해야할 감독당국과 그 기관의 수장까지 채용비리에 연루된데 대한 비판여론이 들끓고 있다. 금감원은 채용비리와 방만경영 문제로 공공기관 지정이 검토됐다가 감독체계 개편 등을 이유로 유보된 바 있다.

금감원은 실추된 명예회복을 위해 금융권 채용비리와 지배구조에 대한 고강도 검사를 예고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 13일부터 하나금융과 하나은행에 특별검사팀 20여명을 투입해 2013년 채용 관련 자료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최종구 위원장도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채용비리 의혹을 확실히 규명해 금융당국의 권위를 바로 세우겠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금융사를 제대로 감시·감독해야할 금감원에서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진데 대해 당국차원의 통렬한 반성과 철저한 규명, 재발방지대책을 내놔야 한다. 또 고객돈과 신뢰를 기반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금융사들도 자신들이 마치 재벌대기업인양 경영진의 가족이나 친인척 등을 부당채용하는 일이 없도록 투명한 채용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KB국민은행은 최고경영진의 증손녀를 부당채용하고 최하위 점수를 받은 전 사외이사의 자녀를 합격시킨 혐의를, 하나은행은 사외이사 및 계열사 사장 지인을 채용하고 특정대학 출신을 뽑기 위해 다른 합격자들을 불합격시킨 혐의로 각각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하나은행 노동조합이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조카와 친동생의 특혜채용 의혹을 제기해 사측과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금융권에서 채용비리를 둘러싸고 폭로전과 여론전이 난무하는 작금의 실태는 우려를 넘어 분노를 안겨준다. 채용비리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청년들에게 공정한 기회조차 박탈한다는 점에서 엄정한 수사와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금융사들도 채용비리 입증이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최근에 불거진 의혹을 단순히 ‘인사관행’으로 치부하며 금융당국과 힘겨루기 행태를 보이는 것은 오히려 국민적 공분만 살뿐이다.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진데 대해 사과하고 검찰 수사결과를 기다리는 게 자신들을 믿고 거래하는 고객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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