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 사장, 관리책임 물어 직무정지로 경종?


현대캐피탈 고객정보 유출 해킹 사고가 터진 지 3개월이 다 되어가고 있다. 금융당국이 8월께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에 징계를 확정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징계 수위에 많은 관심이 몰리고 있다. 가볍게는 주의적 경고(견책) 내지는 '문책경고(감봉)' 수준의 징계부터 해임권고와 일부 업무정지, 금융기관 취업 제한까지 다양한 예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의 둘째 사위인 정태영 사장이 외부기관인 금융당국의 징계가 내려지기 전에 스스로 자진사퇴나 직무 정지 등의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니냐는 지적도 일부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은 정태영(51)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에게 고객 175만 명의 개인 정보가 빠져나간 해킹 사고와 관련해 징계를 내리기로 결정하고, 구체적인 수위를 정하는 데 깊은 고민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예전엔 실무진에게만 징계를 내리다 보니 징계 효과가 부족했다"며 "이번 기회에 경영진에게도 직접 책임을 묻는 본보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규모 상당해 책임도 커

현대캐피탈은 당초 개인정보 유출 해킹 피해자가 42만명이라고 밝혔지만, 조사 결과 실제 피해 고객은 175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고, 해킹 기간도 두 달 동안이나 이뤄졌다는 점에서, 최고경영자인 정태영 사장의 총체적 관리 책임이 크다고 금융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늦어도 8월까지 현대캐피탈과 정 사장을 징계할 방침이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수위 언급은 피하고 있어 궁금증을 더해가고 있다. 수위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가 하면, 신분상 제약이 따르는 문책 경고 등 중징계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임직원에 대한 징계 기준이 담겨 있는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대한 규정' 18조를 보면, 정 사장은 '직무상 감독의무 이행을 태만히 해 금융질서를 문란 시킨 경우'에 해당돼 정 사장은 '문책 경고' 이상의 중징계 대상이 될 수 있다.
현대캐피탈은 정보보안 능력이 취약한 시스템통합(SI) 전문 계열사 현대오토에버에 전산시스템 관리를 맡겨, 시스템 관리 미흡으로 인해 사고를 자처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때문에 정 사장이 총체적인 관리 책임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 사장이 해킹 사고를 유도했다는 명백한 인과관계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주의적 경고(견책)나 감봉 수준의 징계가 내려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캐피탈·카드사 관련 법률인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르면 CEO가 문책경고를 받더라도 신분상 불이익을 준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은행·보험·증권 분야의 경영자가 금융당국으로부터 문책경고를 받으면 3년간 금융회사에 재직하지 못하는 등의 불이익이 있지만, 정태영 사장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한편 최근 40여 개 금융회사의 IT 보안 실태를 점검하고, 해킹으로 고객 정보가 대거 유출된 현대캐피탈과 농협에 대한 조사를 마친 금융감독원은 금융회사에 해킹사고가 발생할 경우 최고경영자(CEO)에게 책임을 철저히 묻고 처벌할 수 있는 대책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현대캐피탈 해킹 사건의 책임문제로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징계수위가 논의되고 있는 정태영 사장은 이번 제재 수위를 높인 기준의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미 벌어진 사안에 대해서는 벌어진 사안 당시의 법령과 규정에 따라 처리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태영 사장의 8월 징계 수위가 경징계 수준으로 완전히 가닥을 잡은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그때가 되 봐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이를 두고 여러 말들만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을 뿐이다.
금융회사의 임원에 대한 징계는 크게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해임권고와 경영권 일부를 포기해야 하는 일부 업무정지, 다른 금융기관 취업이 제한되는 등 신분상 제약이 뒤따르는 문책경고 등의 중징계와 신분상 제약이 없는 주의적 경고나 주의 등 경징계로 구분된다.
현대캐피탈은 8월 금감원의 결정이 내려지기를 기다려 이를 따를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외부의 결정에 따르기보다는 현대캐피탈 내부에서 미리 책임에 따른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는 그동안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보여준 단칼인사 스타일을 두고 나온 것으로, 정 회장이 사위인 정태영 사장에게도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인지, 아니면 정 사장 스스로 그 전에 자신의 징계를 결정할 것인지 의문을 품고 있는 것이다.

단칼인사, 사위에게는?

정몽구 회장은 파격인사, 예측불허 인사로 재계에서 주목을 받은 지 오래된 인물이다. 정기인사와 상관없이 수시로 고위 임원을 퇴진시키거나 다시 불러들이거나 갑작스레 승진시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정기인사가 마무리 된 올해 3월 이후에만 해도, 지난해 국내외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던 기아차 서영종 사장이 갑자기 경질되고 대신 이삼웅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되는가 하면, 현대자동차 연구개발 수장 이현순 부회장을 물러나게 하면서 이 부회장 뒤를 이어 양웅철 사장을 부회장으로 올리는 등 벌써 4번이나 파격인사가 잇따랐다.
그것이 사임이든 경질이든 대부분 고위 임원들의 인사에는 정몽구 회장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사 이유는 정 회장만 알 뿐 그 누구도 몰라 직원들이 적지 않게 당황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렇듯 예측불허 인사 스타일을 보이는 정 회장은, 발견된 문제에 대한 책임성 인사를 그 자리에서 단칼에 해내기로도 유명하다.
미국 공장을 방문했을 때 공장장이 차량 보닛을 여는 방법을 몰라 헤매자 그 자리에서 바로 해임시켜버리고, SUV 차량에 이상이 발견돼 앨라배마 공장장을 교체하는가 하면, 당진 공사 현장에서 문제점이 발견돼 바로 현대제철 건설소장(부사장)과 공사를 맡은 계열 건설사 현대엠코 임원을 경질시킨 일화들은 재계 내에서도 이미 널리 퍼진 얘기들이다.
계열사 인사에도 칼 같은 모습을 보였던 정몽구 회장이었기에 이번 현대캐피탈 해킹 사건에서도 정 회장의 직접적인 인사가 가해질 지에 적지 않은 이목이 집중됐다.
그러나 현대캐피탈의 최고경영자가 둘째 사위인 정태영 사장인 만큼, 그동안의 파격인사와 같은 사례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주된 전망. 이에 사위라고 해서 봐주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정태영 사장 스스로 책임을 통감하고 책임의 무게에 걸맞는 움직임을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인에게 부담을 주기 전에 업무정지나 자진사퇴 등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현대캐피탈 측은 "소설 같은 이야기다"면서 내부적으로 자진사퇴나 정 회장이 내리는 징계 등에 대한 말은 전혀 나오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또 "정태영 사장이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던 것은 금융당국의 징계 결정이 내려지면 이에 따른다는 것이지,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8월에 금융당국의 징계 확정이 있을 때까지 이를 지켜보며 그 때가 돼서 결정을 따르겠다고 덧붙였다. 고객 보상에 대한 사항도 금융당국 결정에 따라 구체적으로 정할 계획이라고.
현대캐피탈은 일단은 보안체계를 점검하고 외부에서 CS팀을 영입하는 등 똑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시스템 관리 등에 애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계 차세대 리더의 운명은?

정태영 사장은 신선한 생각과 파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통해 금융권의 차세대 리더로 촉망받았던 경영자다.
카드에 A부터 Z까지 알파벳 이름을 붙이는 새로운 마케팅 기법과 독특한 디자인 등은 고객들을 현대카드로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고객 중심 금융' 전략을 통해 불필요한 프리미엄 서비스를 없애고 고객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를 탑재한 '플래티넘3 시리즈' 등도 큰 인기를 끌어 높은 연회비에도 불구하고 많은 매출을 기록했다.
정 사장은 이러한 자신만의 마케팅 방식으로 취임 당시 1.8%였던 현대카드의 시장점유율을 8년만에 16%까지 8배 이상 끌어올리고(신용판매 기준), 200만명이던 회원 수도 950만명으로 급증시켰다.
그러나 고객 175만명의 개인정보가 해킹으로 인해 유출되는 대란이 생기면서 그가 쌓아 온 신뢰와 명성이 한꺼번에 무너질 위기에 처하고 만 것이다.
이전의 능력치가 떨어지거나 허점, 문제들이 드러나 동정과 맹비난 속에 초라하게 물러나기 전에 원래 이미지가 지켜지고 있을 때 스스로 당당하게 떠나라는 뜻으로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말이 있다.
시장을 앞서가는 경영 마인드로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을 급성장시켜 칭찬을 받고 있는 정태영 사장이 박수를 받으며 스스로 떠나거나, 그 못지 않은 책임을 짊으로써 업계 내 경종을 울릴 것인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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