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채용비리 의혹에 행장직 내놨지만 사퇴론 확신
대구은행 30일 이사회 열고 차기 행장 선임절차 논의

박인규 DGB금융지주 회장이 잇단 비리의혹으로 퇴진압박을 받고 있다.<사진=대구은행>

[월요신문=임민희 기자] 박인규 DGB금융지주 회장이 비자금 조성 혐의와 채용비리 의혹으로 전방위 사퇴압박을 받고 있다. 박 회장은 자구책으로 ‘대구은행장직 사퇴’ 카드를 꺼냈지만 오히려 ‘자리보전을 위한 꼼수’로 비춰지며 비난여론이 더욱 거세지는 모습이다.

금융업계는 박 회장이 새 은행장 선출 후 거취를 표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조만간 회장직 사퇴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 회장이 회장직을 내놓게 되면 금융권 수장 중 채용비리로 불명예 사임한 사례는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최흥식 전 금융감독원장에 이어 세 번째로 기록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비자금 조성 논란으로 곤혹을 치렀던 박인규 DGB금융 회장이 채용비리 의혹에 결국 발목이 잡혔다.

박 회장은 지난 23일 대구은행 정기 주주총회에서 “지배구조 개선 및 새로운 도약과 은행의 안정을 위해 은행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며 “그룹 회장직은 새로운 은행장이 선출되면 단계적으로 상반기 중에 거취를 표명하겠다”고 사임의사를 밝혔다.

그는 지난해 비자금 조성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혐의를 부인, ‘정면돌파’로 대응해 왔으나 최근 채용비리 의혹으로 검찰수사까지 받게 되면서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취임 직후인 지난 2014년 4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대량 구매해 판매소에서 수수료 5%를 공제하고 현금화하는 일명 ‘상품권깡’으로 31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사적으로 사용한 혐의(업무상 횡령·배임․사문서 위조)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그는 상품권을 현금화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개인 착복혐의는 부인해 왔다.

올해 1월에는 금융감독원이 대구은행의 채용비리(3건) 정황을 포착해 검찰에 관련 자료를 넘기면서 파장이 일었다. 대구은행은 2016년 임직원 관련자 3명을 합격기준 미달에도 간이면접을 통해 합격시킨 의혹을 받고 있다.

대구지검은 대구은행을 2차례 압수수색해 채용청탁 리스트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토대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7급 창구직 채용과 대졸 정규직 공채 과정에서 부당채용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어느 선까지 개입됐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대구은행은 검찰수사가 시작되자 과거 채용과정에서 작성한 인성검사 점수표와 면접점수를 삭제하는 등 증거인멸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박인규 회장의 채용비리 연루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박 회장의 은행장직 사퇴로 대구은행은 차기 은행장 선임절차에 착수할 예정이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30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행장선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며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사외이사 5명으로 구성되며 박 행장은 참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수사중인 사안이라 언급하기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다.

박 회장의 잇단 비리의혹으로 DGB금융이 공들여 온 핵심사업이 차질을 빚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실제로 DGB금융은 2020년까지 종합금융그룹 도약을 목표로 하이투자증권 자회사 편입작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의 승인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DGB금융에 하이투자증권 심사서류 재보강 지시를 내렸다. 금융위의 승인지연 배경을 두고 박 회장의 대주주 적정성 우려가 깔려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박 회장은 지난 2014년 3월 DGB금융 회장 겸 대구은행장으로 취임해 지난해 연임에 성공했다. 4년간 경영성적표는 무난하다는 평가지만 한때 지방계 라이벌로 여겨졌던 BNK금융지주를 추격하기에는 역부족인 모습이다.

DGB금융은 지난해 당기순이익(연결기준)이 2016년(2877억원) 대비 5.0% 증가한 3022억원을 시현했다. BNK금융은 지난해 4031억을 기록했다.

박 회장은 경영안정을 위해 회장직 유지 의사를 밝혔지만 각종 비리의혹에 연루된 CEO가 회사경영을 계속 맡는데 대한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대구지역 57개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대구은행 박인규 행장 구속과 부패청산 시민대책위(이하 시민대책위)’는 27일 성명서를 통해 “상품권 깡으로 불법 비자금을 조성해 횡령한 박 회장은 형사처벌이 불가피한 사건의 피의자로서 대구은행의 위상과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즉각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도 지난 26일 성명에서 “박 회장이 은행장직만 사임하고 ‘은행 안정’ 위해 지주회장 유지하겠다는 건 궤변”이라며 “은행장 선출을 사실상 좌지우지할 지주회장직을 범죄 혐의자가 맡고 있는 상태에서 어떤 지배구조 개선이 가능한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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