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지현호 기자] 현대차그룹이 기업지배구조 개편에 있어 정공법을 택한 이후 재계의 이목은 삼성그룹에 쏠렸다. 이재용 부회장이 돌아온 만큼 밀어뒀던 순환출자고리 해소 등 재배구조 개편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돼서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움직임은 삼성물산에서 시작되는 분위기다. 지난 10일 삼성SDI는 삼성물산 지분 2.1%(10일 종가 기준 5822억원)를 처분하기로 했다. 매각은 국내외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블록딜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는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2015년 삼성물산과 구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를 매각하도록 명령한 근거인 '법집행 가이드라인'을 변경하면서 결정된 사안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유예기간이 오는 8월 26일까지로 4개월 이상 남았고, 특수관계인이 매수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특이점으로 꼽았다.

이에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이 현대차그룹과 마찬가지로 정공법으로 지배구조 개편 이슈를 해소하려 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그룹은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삼성전기(2.6%), 삼성화재(1.4%)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총 4.0%를 처분해야 한다. 이 경우 삼성물산으로 이어지는 7개의 순환출자 구조가 사라지게 된다. 삼성전기와 삼성화재의 지분 매각 일정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지분 매각이 삼성그룹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이미 이재용 부회장(17.1%) 등 지배주주 지배력은 32.9%로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아있는 계열사들의 삼성물산 지분 처분 과정에서 특수관계인 매수 참여 여부에 주목할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물산이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로서 행보를 가시화할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재계에서는 삼성물산이 전일 삼성바이오에피스 주식 매입 계획이 없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추후 행보에 대한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이목을 끄는 시나리오는 자금력을 끌어모은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 금산분리 이슈를 해결하면서 지배구조도 개편하는 것이다.

근거는 삼성전자가 올 상반기 자사주 7.29%(941만주)를 소각할 계획이다. 이 경우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율이 10%를 초과, 금산법에 걸리게 된다. 현재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각각 8.23%, 1.44%를 갖고 있는데 삼성전자 지분 소각이 이뤄지면 각각 8.88%, 1.55%로 높아진다. 따라서 두 금융계열사는 삼성전자 지분 0.43%를 매각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인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주식 매입에 나서지 않은 것도 이를 위한 포석이란 분석이다. 삼성물산은 서초사옥 매각도 추진 중이다. 업계에서는 매각대금이 최소 6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여 해당 자금이 어디에 쓰일지 주목하고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물산이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로서 삼성전자 등을 매입하는 명분은 충분히 있다"며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43.4% 소유하고 있어 이 주식을 전자에 팔고 생명이 보유한 전자 주식을 매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또 이 연구원은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금산분리 문제가 숙제로 꼽히고 있고 취득가를 시가로 바꾸는 보험업법도 추진 중이어서 생명이 전자 지분을 매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삼성물산이 전자 주식을 매입하면 향후 그룹의 지주회사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 자회사 가치도 부각돼 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수혜가 가장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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