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지현호 기자] 올 초 문재인 대통령은 첫 장·차관 워크숍에서 "모든 국정 운영의 중심을 국민에게 두고, 복지부동·무사안일·탁상행정 등 부정적 수식어가 더 이상 따라붙지 않도록 각 부처와 소속 공무원이 혁신의 주체가 돼주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지금까지와 다른 정부를 만들기 위해 공무원이 먼저 변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직사회에 혁신의 바람이 불 줄 알았지만, 아직 달라진 건 없었다.

최근 분양현장에서 만난 이해관계자들은 금융결제원의 아파트투유 홈페이지 개편 작업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개편 작업 일정을 갑작스럽게 일방 통보하는 것은 물론, 두 차례나 지연해 분양 일정을 잡는데 혼선이 빚어진 것이다.

지연 사유는 국토교통부의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공표 시점에 맞춰 시스템 정비작업을 하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개정된 규칙에 맞춰 청약 시스템을 개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피해가 막심하다. 청약 일정을 잡아야 모델하우스를 오픈하고 분양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시행사, 시공사는 물론 분양대행사, 홍보대행사까지 이해관계자의 일정이 모두 여기에 매달려있다.

따라서 분양일정이 미뤄지면 수십 명의 인력은 물론 그로 인한 사업비도 늘어난다. 반대로 갑자기 분양을 앞당길 경우 밤샘 작업을 해야 하는 등 현장의 피로도는 극에 달한다.

실제로 당초 청약시스템 개편이 예정됐던 지난달에는 갑작스러운 개편 지연으로 수많은 건설사들이 분양 일정을 조절, 급하게 모델하우스를 오픈해야 했다. 이달도 마찬가지 사태가 벌어졌다. 내달 초 분양을 계획했던 사업장들은 난리가 났다. 분양을 미루거나 당겨야 해서다.

삼성 작업환경보고서 공개 논란도 마찬가지다. 고용부가 작업환경측정결과 보고서를 제3자에게까지 공개를 결정하면서 불거진 현 사태는 산업계에서 보면 '어이가 없는' 상황이다. 국가 경제의 한 축인 반도체 산업 기반을 흔들 수 있는 '국가핵심기술'이 담겨 있는 자료를 정부가 나서서 외국에 유출되도록 길을 터주려 한 셈이니 말이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산업기술보호위원회에서 해당 자료에 국가핵심기술이 담겨 있다는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수년 내에 중국 등 경쟁국가에 따라잡혔을지 모를 일이다.

아직 삼성 작업환경보고서 논란은 종지부를 찍지는 않았지만, 국가핵심기술이 담겨 있다면 신중할 필요가 있다.

책상에만 앉아서 서류만 볼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영향을 받을 국민도 살펴봤다면, 사전에 충분한 조율과 정확한 예측이 이뤄졌다면, 이런 일은 없지 않을까.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조인 '혁신'이 하루빨리 국민 모두가 체감할 수 있는 훈풍으로 다가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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