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 해상크레인 / 사진 = 김덕호 기자

[월요신문=김덕호 기자]지난해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에서 용접을 배웠던 A씨는 현재 울산의 한 중견업체에서 배관보조 일을 하고 있다. 선박이나 해양 플랜트에 설치되는 배관 파이프를 설치하는 배관공을 보조하는 역할이다. A씨는 애써 배운 용접 기술을 사용해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공(기술 숙련공)들도 많이 쉬고 있는데 굳이 초보자를 채용할 것 같지 않아서다.

울산광역시에는 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 현대미포조선, 세진중공업, 신한중공업 등 선박 제조와 관련된 기업이 집중돼 있다. 여기에 선박 기자재를 제조·납품하는 업체를 더하면 조선업 종사자 수는 크게 늘어난다. 특히 울산 동구는 '조선업 경제특구'라 불릴 만큼 조선업과 관련된 산업 비중이 높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의 해양플랜트 수주가 43개월째 제로에 머물러 있고, 수주잔량도 2014년 말 145척이었던 것이 현재는 86척(4월 기준) 수준으로 크게 줄면서 지역 경제에 타격을 입었다.

선박 건조로 바빠야 할 도크는 빈 곳이 늘고 있고 해양플랜트 부문은 이번 달 이후 일감이 끊긴다. 당장 해양플랜트 인원 3000여 명에 대한 급여 문제를 고민할 판이다.

이러한 불황 여파는 지역 경제침체로 이어졌다. 그리고 울산 동구는 그 중심에 섰다. 매년 4월 작성되는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만 해도 2015년 7만1200명에서 2016년 6만9893명, 2017년에는 4만7746명으로 급감했다.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사람, 즉 실업자가 늘었다는 의미다.

울산 동구에서 만난 시민들은 정규직보다는 소외되고 힘이 없는 비정규직과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더 큰 타격을 입었다고 입을 모았다. 상당수 현대중공업 협력업체가 사업을 접었거나 도산한 것이다. 퇴직금 지급 부담에 고의로 부도를 낸 업체도 적지 않다는 소문이다.

현지 인력업체 소장은 "4년 전만 해도 울산 동구 주택가 지역에는 사람을 찾는 구인 광고가 넘쳐났었다"며 "일자리보다 사람이 적어 인력난이 심각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때가 참 그립다"고 전했다.

또 다른 주민은 "재작년 4월 이후 일자리를 찾지 못해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퇴직 전 CO2 용접 일을 했다던 그는 마지막에 받았던 일당이 18만원이라고 했다. 야근과 특근 수당을 더하면 27만원을 넘겼고, 25일 근무하면 세금을 떼도 600만원 이상을 받아 갔다고 한다. 많게는 800만원을 벌기도 했지만 지금은 일용직 자리도 많지 않다고 토로했다.

사실상 현대중공업은 자체 인력 구조조정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이다. 이에 비정규직이나 협력사까지는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

울산 동구지역 경기 침체로 주인을 찾지 못하는 상가 건물이 늘었다. / 사진 = 김덕호 기자

급여생활자가 적어지면서 울산 동구 상권은 물론 부동산시장도 침체 일로를 걷고 있었다.

동구 지역 최고 상권 중 하나인 일산해수욕장 근처에도 빈 상점이 보였다. 전성기에는 '부르는 게 값' 이라며 1억원 이상의 권리금이 붙었던 지역이다.

A중개업소 사장은 "장사를 접고자 하는 상인은 많은데 찾는 손님은 없다"며 "2010년까지만 해도 동네 슈퍼에서 콜라 캔 하나에 2000원을 불러도 사던 사람들인데 이제는 돈 1000원도 비싸다고 하니 장사가 되겠냐"고 말했다.

한 요식업체 대표는 "최근 세금 신고를 했는데 납부해야 할 세금이 2년 전의 1/3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매출도 줄고 이익도 줄어드는데 임대료는 그대로여서 부담이 커졌다"고 전했다.

부동산과 원룸 시세도 크게 떨어졌다. 전하동과 방어동 등 주택지가 밀집된 구역의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매매 물건이 빼곡히 붙었다. 전세나 월세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달방(보증금 없이 월세만 지불)으로 내놓는다는 전단도 전봇대에 붙었다.

B 개업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물량은 넘쳐나는데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 원룸촌의 경우 1개 건물에 입주자가 단 3명인 곳도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울산 동구에서 희망을 말하는 것은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뿐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정리해고 중단', '조선업 부활'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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