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뒤이어 사조·오뚜기·동서·농심 등 중견기업 ‘진땀’

사진=뉴시스

[월요신문=유수정 기자] 취임 1주년을 맞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 첫 해보다 더욱 강도 높은 재벌개혁을 예고하고 나서 벌써부터 긴장감이 감도는 모양새다.

최근 공정위가 “조사 대상을 중견기업까지 확대할 것”이라는 뜻을 밝혀옴에 따라 김상조의 이 같은 선포에 ‘벌벌 떨’ 기업이 늘어났기 때문.

기존 ‘일감몰아주기법’의 규제 대상이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대기업집단을 중심으로 진행된 탓에 다소 안심하고 있던 중견기업들도 혹여나 ‘김상조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을지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4일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1년간의 재벌개혁과 관련해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적어도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 비가역적인 변화가 시작됐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말하며 앞으로 더욱 강한 수위로 재벌가의 지배구조 개혁을 이루겠다는 뜻을 전했다.

“일감 몰아주기 논란의 경우 지배 주주 일가가 비주력·비상장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면서 발생하는 만큼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해 달라”며 자발적인 개선을 요청했지만, 사실상 ‘핵심 계열사의 지분이 아닌 총수 일가의 부당 이득을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지분은 하루 빨리 매각하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어 그 압박 강도를 한층 높인 셈이다.

그는 “지분 매각이 어렵다면 가능한 계열분리를 해달라”고 거듭 요구하며 “대기업 집단의 대주주 일가들이 비주력 비상장 회사의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고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계속한다면 언젠가는 공정위 조사 제재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향후 조사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특히나 SI(시스템통합)업체, 물류, 부동산관리, 광고 등 그룹 핵심과 관련이 없는 부문에 총수일가 일감 몰아주기가 이뤄지고 있는 점을 구체적으로 지목하며, “이들 계열사에 총수 일가가 다수의 지분을 보유하고 일감 몰아주기를 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해당 업종들은 그간 일감 몰아주기 통로로 자주 거론돼왔던 바 있다. 공정위가 자산 10조원 이상 그룹 27곳의 내부 거래 현황을 조사한 결과, SI 업종의 내부 거래 비중이 무려 69.8%에 달했던 것. 부동산(56.1%)과 광고 대행 등 전문 서비스(37.6%), 물류(33.7%) 업종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진=뉴시스

◆ “아직은 지켜봐야 하겠지만”…김상조 한 마디에 당혹스런 대기업

이 때문일까. 김 위원장의 선포 바로 다음날인 15일 삼성SDS의 주가는 장초부터 폭락의 기미가 보이더니 전일 대비 무려 14%나 하락한 19만6500원으로 마감했다. 삼성전자의 시스템 통합(SI) 계열사인 삼성SDS의 전체 주식 중 17.01%는 이재용 등 총수일가가 보유하고 있다. 보다 자세한 비중으로는 이재용 9.2%(711만6555주), 이부진, 이서현 각각 3.9%(301만8859주), 이건희 0.01%(9701주) 등이다.

현대차의 광고 계열사인 이노션 역시 전날보다 7.21% 떨어진 6만3100원에 장을 마무리했다. 해당 회사의 경우 정성이가 28%(559만9000주), 정의선이 2%(40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주식시장을 들었다 놓을 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 김상조의 한마디는 4대 그룹으로 알려진 삼성그룹과 현대차, LG그룹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마저 쏟아질 정도다.

해당 기업 모두가 김 위원장이 지목한 업종의 관련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물론, 총수일가의 지분 보유율 역시 상당 부분인 점을 감안할 때 공정위가 우선적으로 4대 그룹 총수일가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조사에 착수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상장사인 삼성SDS와 이노션을 제외하고도 이들 총수일가는 다양한 비상장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지속적인 일감몰아주기 의혹을 받아왔던 바 있다.

현대자동차 그룹의 IT서비스 전문업체인 현대오토에버의 경우 정의선이 전체의 19.46%(40만2000주)를 보유하고 있으며, LG그룹의 물류 계열사인 범한 판토스는 그룹 총수 자리를 승계 중인 구광모 상무가 전체 주식의 7.5%(15만주)를, 여동생 구연경과 구연수가 각각 4%(8만주)와 3.5%(7만주)를 갖고 있다. 아울러 방계인 구형모 2.5%(5만주), 구연제 2.4%(4만8000주) 등의 보유 비중까지 합치면 총수 일가가 지분의 19.9%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상조의 날선 압박이 예상됐던 탓일까. 그간 대표적인 일감몰아주기 기업으로 손꼽히며 공정위의 칼날을 직접적으로 받아왔던 GS그룹은 총수일가가 보유한 GS아이티엠(SI 계열사)의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 10대 기업 외 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까지 ‘벌벌’

한화그룹 역시 최근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한화에스앤씨(S&C)와 한화시스템을 합병하는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놨다. 한화S&C의 지분을 55.36% 보유하고 있던 에이치솔루션은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김동선 전 한화건설 차장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어 대표적인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중 하나였다.

이에 앞서 CJ그룹과 태광그룹은 관련 계열사들을 합치고 나누는 작업을 진행했으며, 대림그룹 역시 일감 몰아주기 해소와 지배구조 개선 등을 골자로 하는 경영쇄신 계획을 발표했다.

공정위는 김상조 위원장의 자평처럼 취임 첫 해였던 지난해 대기업 옭아매기로 다양한 성과가 나왔던 것을 본보기 삼아 올해는 그 규모를 중견기업으로 보다 확장할 전망이다. 이것이 지난해 대기업 등 뒤에 숨어 한숨 놓을 수 있었던 중견기업들이 이번 김상조의 강력한 선포에 더욱이 벌벌 떨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간 상대적으로 대기업에 비해 크게 주목받거나 공개되지 않았을 뿐이지, 총수 일가 소유의 회사와 내부 거래 비중 등이 높은 중견기업들이 곳곳에 다양이 분포돼 있기 때문.

특히나 유통 부문의 경우 우선적으로 김상조 위원장이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제기하며 칼날을 겨누었던 하림그룹과 하이트진로, SPC그룹, 아모레퍼시픽 등에 가려진 중견기업이 수도 없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더욱이 업계 전반적으로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선적으로 가장 눈길을 끄는 기업은 사조그룹이다. 사조그룹은 그간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세금 한 푼 없이 오너가 3세인 주지홍 사조해표 상무에게 경영권 승계 작업을 완료했다는 편법 승계 논란을 받았던 바 있다.

갓뚜기로 알려지며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수혜자로 떠오른 오뚜기 역시 일감몰아주기에 의한 함영준 회장 일가의 사익편취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2016년 13개의 계열사 중 오너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9개 계열사의 내부거래액이 무려 9169억원에 달하는 것은 물론, 매출 대비 내부거래 비중 역시 30.0%에 육박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동서식품으로 유명한 동서그룹 역시 오너가의 고배당잔치와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논란으로 외신마저도 주목케 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창업주인 김재명 명예회장의 장남 김상헌 동서 고문과 차남 김석수 회장, 김 고문의 장남인 김종희 전무 등을 포함한 특수관계자의 지분이 총 67.15%에 달하는 지주회사 동서를 통해 계열사를 지배하는 과정에서 그룹 내 계열사 간 매출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심 역시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피해가기 어려운 대표 기업 중 하나다. 율촌화학은 물론 엔디에스, 농심미분, 호텔농심 등의 내부거래 비중과 규모가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 태경농산과 농심엔지니어링 역시 해당 논란에서 피해가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 기업에서 무려 6개의 계열사가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휘말렸다는 점은, 산업 전반적인 부분을 놓고 보더라도 상당한 수준이다.

특히나 해당 계열사들은 모두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의 세 아들인 신동원 ㈜농심 부회장과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 등이 최대 주주로 있거나 상당 부분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김상조의 이번 ‘일감 몰아주기 철폐’ 규제와 맞물려 더욱이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한편, 최근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해당하는 60대 대기업집단 소속 225개 계열사의 지난해 내부거래 규모는 총 12조9542억원에 달했다. 이는 이들 기업의 지난해 매출액 합계인 94조9628억원의 13.6%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들 중 지난해 매출 대비 내부거래 비중이 50%를 넘은 곳은 35개나 됐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기업집단에서 총수 일가의 지분이 30%를 초과하는 상장사(비상장사는 20%)의 경우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원을 넘거나 연 매출의 12% 이상일 때 규제 대상이 된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