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월요신문=유수정 기자] “경영권 분쟁 문제로 대한민국 경제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상황의 당사자인 만큼, 그때는 내 스스로를 죄인이라 생각했다. 혹여나 최고권력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나를 미워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이에 대해 사과하러 간 자리에서 뭘 부탁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 아니겠는가. 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한 아이디어가 있다며 조심스럽게 말하는 자리에서 면세점 점포 하나에 대한 재취득을 논하는 것 자체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016년 3월14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 자리에서 면세점 관련 청탁을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대통령이 (회장직을) 그만두라 할까봐 걱정하는 상황에서 청탁이 말이 되냐”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신 회장은 9일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판사 강승준) 심리로 열린 국정농단 사건의 항소심 속행공판의 피고인 신문 자리에서 “그룹의 현안을 해결해달라고 부탁한적 없다”고 혐의에 대해 극구 부인하며 이 같은 입장을 전했다.

이날 신 회장은 “2015년 형 신동주와 경영권을 두고 분쟁을 시작한 이후 많은 비난을 받은 것은 물론 심지어 일본기업 논란까지 겪었다”며 “이후 국세청의 압수수색 등 정부의 여러 압박이 계속해서 들어왔고, 정부가 우리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구나 라고 느끼고 있었다”고 말문을 뗐다.

그는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롯데면세점(월드타워점)이 심사에서 탈락했고 경쟁력이나 경험이 없는 기업이 합격했다는 사실은 의아한 한편 매우 충격적이었다”며 “잘못된 정책 등으로 우리가 떨어졌다기보다는 경영권 분쟁 논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이어갔다.

이어 “이 과정에서 대통령이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는 상황을 전하며 “저는 경영권 분쟁 사태와 관련해 질책하려는 것이 아닐까 많이 걱정했다. 박 (전) 대통령은 예전부터 명예회장(신격호)을 많이 존경한다고 말했었는데, 형이 아버지를 앞세워 제가 불효자라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당시 불안감을 금치 못했던 이유에 대해 언급했다.

아울러 그는 “박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심리를 끼쳐 죄송하다 거듭 사과드리며, (일본) 임시주총에서 이겼으니 분쟁은 일단락됐고 더 이상 시끄럽게 할 일은 없을 것이라 말씀드렸다”면서 “저에 대한 마음이 조금은 풀린 것이 아닌가 하고 안도하는 상황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지원과 스키협회 회장 출마 사실, 평창올림픽으로 인한 경제활성화 방안 등을 설명했을 뿐 절대로 면세점의 특허를 재취득하게 해달라고 한 적이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의 지원금 요청 사실과 관련 “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국가적 사업에 지원할 것을 요청한 대통령의 말에 되도록 협조하겠다고 대답했다”며 “기업인에게 대통령이라는 존재는 어렵고 힘이 센 최고 권력자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면 국가사업의 지원 요청에 당연히 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신 회장은 이 같은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할 증거로 자신이 근무하던 호남석유화학(롯데케미칼의 전신)이 국제빌딩 내 위치했던 사실을 전하며, 당시 국제그룹이 대통령의 요청을 거절해 공중분해 됐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정부에는 늘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느꼈던 일화를 언급했다.

한편, 재판부는 이날부로 국정농단 사건의 심리를 마무리했으며 오는 11일부터는 신 회장을 비롯한 롯데 총수일가의 경영비리 사건의 심리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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