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일괄 지급’ 방침으로 보험사 압박

<사진=뉴시스>

[월요신문=고병훈 기자] 금융당국이 가입자에게 내주라고 권고했지만 생명보험사들이 아직 주지 않은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보험료 전액을 한 번에 납입해 매월 연금을 받다가 만기 때 원금을 모두 돌려받는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관련, 생보사들이 가입자들에게 약관상 지급해야 할 연금과 이자를 덜 줬다는 것이 이번 쟁점의 핵심이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9일 발표한 ‘금융감독 혁신과제’에 즉시연금 미지급금 일괄 지급 건을 의제에 포함시키며 보험사 압박에 나섰다. 보험사들은 ‘일괄 지급은 힘들다’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논란은 불명확한 약관에서 비롯됐다.

보험사들은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가입자들에게 매달 연금의 일부 금액을 뗀 채로 보험금을 지급했다. 제외된 금액은 만기 때 가입자들의 원금을 돌려주기 위한 만기환급금 재원으로 이용됐는데, 해당 약관에는 만기보험금 지급재원을 공제한다는 내용이 명시돼있지 않았던 것이다.

금감원은 기존 약관에 만기보험금 지급재원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없었고,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에 따른 공제는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분쟁이 고조되자 생보사들은 약관을 개정해 직접적인 공제내용을 기재했다. 다만 금감원은 약관 개정 이전 계약 건에 대한 보험금 지급도 소급적용할 것을 요구해 업계는 갑자기 막대한 돈을 토해내야 될 처지에 놓였다.

생보사들은 금감원의 방침에 대놓고 반발은 하지 못하면서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생보사 관계자는 “약관의 규정을 명확하게 하지 못해 분란의 소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생보사 책임은 있다”고 말하면서도 “만기 시 원금을 지급하기 위해 일정 금액을 지급 연금에서 빼내 적립하는 방식을 인정하지 않으면 사실상 생보사는 이익을 낼 수 없다”고 항변했다.

이어 “금감원이 즉시연금의 이 같은 구조를 모를 리 없다”며 “금융감독이 여론에 부합해 생보사를 지나치게 몰아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생보사 관계자는 “금감원이 일부 사례를 마치 전체 가입자 16만여 명에게 모두 불완전판매를 한 것처럼 해석해 일괄 지급하도록 하는 것은 과도한 조치”라며 “상품 출시 전 감독기관에 제출하여 인가받은 약관을 통해 가입한 내용을 이제 와서 보험사 책임으로만 떠넘기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라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즉시연금 미지급 생보사는 약 20곳으로 미지급 규모는 최대 1조원으로 추산된다. 삼성생명의 미지급액이 약 4000억원으로 가장 많고, 한화생명 미지급액이 약 800억원 등이다. 기존 가입자 전체를 구제한다고 가정하면 대상은 약 16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삼성생명은 이미 지난 4월에 분조위 결정에 대해 지급 의사를 밝히고, 이달 하순께 열리는 이사회에서 즉시연금 미지급금의 일괄 지급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화·교보생명 등은 삼성생명의 처리 여부를 지켜보면서 결정한다는 방침이지만 업계는 다른 생보사들도 삼성생명처럼 지급 결정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삼성과 한화를 포함한 대부분의 생보사들의 유형이 비슷하다고 보기 때문에 다른 생보사들도 지급해야한다”며 “만약 보험사들이 끝까지 결정을 거부한다면 소송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금감원도 과거 부실했던 약관을 제대로 심사하지 않았단 점에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자살보험금 사태에 이어 즉시연금, 암보험금 논란 모두 부실한 보험약관에서 비롯됐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보험산업의 고질적 병폐인 부실한 약관이 이번에도 문제가 됐다”며 “향후 이런 분쟁이 재발되지 않도록 감독기관에서도 상품 약관에 대한 세부적인 기준을 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