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검증 취약했던 관행…근본적 제도 개편 시급

<사진=뉴시스>

[월요신문=고병훈 기자] 보험업계를 뒤흔들었던 ‘자살보험금’ 사태가 일단락된 지 1년 남짓 만에 이번에는 ‘즉시연금 미지급’ 사태로 보험업계가 위기를 맞이했다. 두 사건 모두 ‘허술한 보험 약관’이 문제의 핵심으로 꼽히고 있다.

대형악재가 연이어 터지자 보험업계에서는 금융상품 약관에 대한 승인과 감독 권한을 가진 금융당국이 책임 있는 자세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모든 책임을 보험사에 전가하고 있는 금융당국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감원은 “이번 사태 역시 보험사의 잘못된 약관에서 비롯된 일”이며 “이를 여러 차례 지적했음에도 보험사들이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고 있다. 당국의 방침대로 보험사에서 책임을 져야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금감원과 생명보험사 간 책임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보험업계에선 통상 보험상품을 출시할 때 기초서류라고 불리는 약관, 산출방법서, 사업방법서 등에 관해 금융당국의 승인을 거쳐 출시한다. 특히 즉시연금의 경우 목돈을 가진 고객이 대상인 방카슈랑스(은행에서 파는 보험상품) 상품으로 출시돼 사후 보고하는 기존 보험상품과 달리 금감원의 사전 신고 후 판매됐다. 문제가 된 약관에 대해 당국이 미리 살펴보고 승인을 해줬다는 의미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약관이 미흡했다는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금융당국이 직접 이 약관을 승인한 만큼 당국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이어 “당국이 말한 ‘일괄구제’ 방침은 무리한 요구”라며 “수 천억원이라는 보험사 한 해 영업실적과 맞먹는 규모의 큰 돈을 어떻게 쉽게 지급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보험사들이 이번 즉시연금 논란에 대해 법적 해결을 구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악의 분쟁으로 꼽히는 자살보험금 사태 이후에도 당국이 과거 만들어진 모호한 약관을 그대로 방치해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금감원이 만든 표준약관을 그대로 준용하거나 한 금융사가 승인받은 약관을 그대로 베껴내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당국도 이를 알면서 암묵적으로 묵인하다보니 매번 같은 문제가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살보험금 사태 이후에도 당국 차원의 가이드라인이나 잘못된 약관에 대한 조치가 없었다”며 “이번 사태도 보험사만 전적으로 책임지고 넘어간다면 제2, 제3의 사태가 또 발생할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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