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단계별 성비 공개 두고 정부부처-금융권 ‘신경전’

<사진=뉴시스>

[월요신문=고병훈 기자] 채용비리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금융권이 하반기 대규모 채용을 앞두고 있다. 신한금융 검사 완료를 기점으로 금융권에 대한 채용비리 검사가 일단락된 데다 은행권이 마련 중인 채용 모범규준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본격적인 채용문을 연 것이다.

이번 하반기 채용에서는 합격자 ‘성비 공개’가 이루어질 방침이라 앞서 논란이 됐던 성차별 채용 논란을 해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채용단계별 남녀 성비를 공개하라는 주장이지만, 은행권은 과도한 규제라며 반대하고 있어 여전히 논란이다.

지난 5일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채용 성차별 해소 방안’을 발표했다. 최근 검찰수사에서 KEB하나은행·KB국민은행이 고의로 성별 합격자 비율을 조정하는 채용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밝혀지는 등 채용에서 성차별 방지 대책을 내놓으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어서다.

일자리위원회는 지난달 은행연합회가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을 만들기 위해 의견을 수렴할 때도 성차별 금지와 함께 채용단계별 성비 공개를 모범규준에 반영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익명 신고를 받는 ‘채용 성차별 신고센터’를 운영하는 등 채용 성차별 의심 기관에 대한 감독과 제재를 강화하기로 했다. 응시자와 합격자 성비 또는 최종 합격자 성비 격차가 타 기관에 비해 현격히 차이가 나는 기관 등에 대해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여부를 집중 감독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은행권은 ‘과도한 규제’라고 반박했다. 정부나 공공기관조차 채용단계별 성비를 공개하지 않는데 사기업인 은행들이 공개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금융당국도 일자리위원회와 여가부의 요구가 과도한 규제라는 은행권 의견에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노동부도 비슷한 의견을 밝혀 은행연합회는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에 채용단계별 남녀 성비 공개는 넣지 않았다.

대신 이들은 악화된 여론을 의식해 최종합격자의 남녀 성비는 공개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다음 달 신규채용 최종합격자의 성비를 은행 경영 공시에 포함하도록 ‘은행업 감독규정 시행세칙’을 개정할 예정이다. 시행세칙 개정이 마무리되면 은행권은 올해 하반기 신입직원 채용 때부터 최종합격자의 남녀 성비를 공개하게 된다.

다만 일자리위원회와 여가부는 채용 과정마다 성비를 투명하게 공개, 성차별이 의심스러운 곳은 실태조사와 근로감독이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해 ‘단계별 채용 성비 공개’와 ‘최종합격자 성비 공개’를 두고 양측의 신경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목희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일자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채용의 공정성 확보는 개별 기관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신뢰의 문제이며 우리 사회의 민주적 성숙도를 보여주는 척도가 되고 있다”며 “그간 특혜 채용, 성차별 채용 문제로 실망하고 마음 고생하셨을 청년 구직자들, 특히 여성 구직자들의 걱정을 덜어드릴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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