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운데)가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를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2018.08.14./사진=뉴시스

[월요신문=성유화 기자] '비서 성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치열한 공방을 벌여왔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53·불구속)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비서 김지은 씨는 “끝까지 싸울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 “피해자의 진술 납득가지 않는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14일 오전 10시30분 피감독자 간음·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 대해 "(호텔 성폭행 혐의에서) 김씨는 '씻고 오라'는 의미를 넉넉히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며 "피해자의 진술에서 납득가지 않는 부분이나 의문점이 많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얼어붙은 해리상태에 빠졌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인 '위력'에 대해 "안 전 지사는 유력 정치인이자 차기 대권주자지만 '위력'의 행사가 있었다고 보기 의문이다"라며 혐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결국 "검찰의 공소사실 뒷받침이 부족하다"면서 "현재 우리 성폭력범죄 처벌체계 하에서는 이런 것만으로 성폭력 범죄라고 볼 수 없다"며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안 전 지사는 지난해 7월29일부터 올해 2월25일까지 수행비서이자 정무비서였던 김지은씨(33)를 4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며, 김씨를 5차례 기습추행하고 1차례 업무상 위력을 이용해 추행한 혐의도 받았다.

검찰과 피해자 김지은씨(33)는 '도지사의 위치와 권세를 이용한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라고 강조하며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이 부족하고 김씨의 진술도 믿기 어렵다고 판단내려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선고를 마치고 법정을 나선 안 전 지사는 소감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죄송하고 부끄럽다. 많은 실망을 드렸다"며 "다시 태어나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안희정 성폭력 사건 1심 무죄 선고에 대한 여성단체 기자회견'에서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2018.08.14./사진=뉴시스

◆김지은 측 “정당한 심판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

안 전 지사의 이러한 판결에 대해 피해자 김지은 씨는 "권력자의 권력형 성폭력이 법에 의해 정당하게 심판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선고 직후 기자들에게 배포한 입장문을 통해 "굳건히 살고 살아서 안희정의 범죄 행위를 법적으로 증명할 것"이라며 이같이 전했다.

"지금 이 부당한 결과에 주저앉지 않을 것"이라며 "저를 지독히 괴롭혔던 시간이었지만 다시 또 견뎌내겠다. 약자가 힘에 겨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세상이 아니라 당당히 끝까지 살아남아 진실을 밝혀 범죄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초석이 되도록 다시 힘을 내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어둡고 추웠던 긴 밤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무서웠고 두려웠다"며 "침묵과 거짓으로 진실을 짓밟으려던 사람들과 피고인의 반성 없는 태도에 지독히도 아프고 괴로웠다"고 힘든 싸움이었음을 전했다.

이어 "그런데도 지금 제가 생존해 있는 건 미약한 저와 함께해주는 분들이 있어서였다. 숱한 외압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진실된 목소리를 내주셨고, 함께해 주셨다"며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평생 감사함을 간직하며 저보다 더 어려운 분들께 보답하며 살겠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재판 과정에서 김씨를 지원해온 공대위도 선고 직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를 강력하게 규탄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가 은밀하고 악랄하게 이뤄졌는데 이를 들여다봐야 하는 게 사법부의 몫"이라며 "피해자가 수백장의 조서로 말해온 현실에 재판부는 끝내 응답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혜선 변호사는 "피해자는 안 전 지사의 범행을 입증하기 위해 최대한 자세히 진술해야 했고 (성폭행 당시를) 계속 기억하고 떠올리고 말했어야 했다"며 "재판부는 이 사건의 사회적 의미와 무게감에 대한 고민 없이 무죄추정원칙과 죄형법정주의에만 치중했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권김현영씨는 "안 전 지사와 김씨는 동원 가능한 자원이 완전히 달랐다"며 "안 전 지사는 가족까지 동원해 자신의 의사표현을 충분히 했고 그 과정에서 김씨는 엄청난 2차 피해를 겪었다"고 김씨가 받은 '2차 피해'에 대해서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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