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꿈틀대는 조직폭력, 연일 말썽

 
소싸움으로 유명한 경북 청도에 영남권 조직폭력배 수백명이 모여 화제다. 50을 넘긴 한 원로 조폭의 결혼식을 축하해 주기 위해 모인 조폭들로, 이들의 집단출현으로 일대는 한 동안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경찰 역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을 보였으나, 다행히 조폭들은 별다른 사고 없이 결혼식을 마친 뒤 뿔뿔이 흩어졌다. 반면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한동안 잠잠하던 조폭문제가 다시금 극성을 부리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 때문이다.  

조직폭력을 다룬 영화가 심심찮게 개봉된다. 한때는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영화장르가 조폭을 다룬 느와르와 코미디물이던 시절도 있었다. 일제시대를 거쳐 자유당 시절 국회의원까지 지낸 김두한이나 자신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보스’에 직접 출현했던 조양은 같은 조폭은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이름들로 일부 청소년들의 경우 여전히 이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지난 1990년대 이번까진 전국의 밤거리는 물론 선거판에서도 조폭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호남출신 조폭들이 고향을 떠나 수도권 일대에 자리를 잡은 뒤 전국적인 유명세를 날린 반면, 호남보다 살만했던 대구와 부산 등 영남출신 조폭들의 경우 고향에 머물며 해외조직과 연계해 조직의 기반을 다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 1980~90년대 군사정권이 강력하게 추진했던 조직폭력법 근절대책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전국 각지의 조폭 두목과 그 조직원들이 줄줄이 교도소로 향했으며, 남아 있던 조폭들 역시 예전 같은 위세를 떨칠 순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군사정권의 조폭 단속은 당시에도 인권에 대한 문제를 불러 일으켰으며, 민주화가 어느 정도 정착된 최근에 와서는 더 이상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조폭에 대한 정부 단속이 약화되자 다시금 조폭들이 수면위로 떠오르는 양상이다. 한 때는 이들 역시 스마트해진 시대흐름에 따라가듯 주가조작이나 강압적 인수합병 등 다소 전문성이 필요한 사업에서 폭력성을 발휘하더니, 최근 분위기는 복고로 회귀하는 추세다. 일반인을 상대로 협박과 폭력을 일삼고 이를 빌미로 금품을 갈취하거나 이권을 가로채는 사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청도에 모인 조폭 수백명
대구 아래 위치한 경북 청도는 인구가 5만 명에 불과한 소도시로, 소싸움을 제외하면 관광객이 잘 찾기도 않는 그런 곳이다. 그런데 최근 청도의 한 체육관에 대구와 부산 및 울산과 포항 등 영남권 일대 조폭 수백명이 모였다.

이 지역 출신 원로 조폭 A의 늦깎이 결혼식을 축하해 주기 위해 모인 것으로, 젊은 시절 살인사건에 연루돼 15년을 선고 받은 A는 교도소 안에서 상해죄를 추가 총 17년 1개월을 복역한 뒤 세상에 나온 인물이다. 또한 A는 현재 어느 조직에도 소속된 상태는 아니지만 오랜 교도소 생활 동안 여러 교도소를 거치며 쌓아놓은 선후배 조폭들과 인맥때문에, 이 계통에선 상당한 유명인사다. 실제 그의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을 살펴보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거물급 조폭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우선 김두한 이후 맨손싸움으로 유명세를 날린 조폭계 원로 조창조를 필두로, 부산 영도파 및 대구 동성로파·향촌동파·달성동파·원대동파 그리고 영천 팔공파 두목과 조직원 등이 결혼식에 참석한 것이다.
축하화환도 대단했다. 양은이파와 서방파가 서울을 접수하기 전 최대 파벌을 자랑하던 신상사파의 신상현과 부산 칠성파의 두목 이강환 등을 비롯 영남과 호남권 조폭 두목들의 축하화환이 결혼식장을 가득 매운 것이다.
이들 외에도 개그맨 전유성이나 조우만 청도 부군수, 이원우 청도군의회 의장 등 지역 인사들도 결혼식에 참석했으나, 조폭들에 가려 별다른 주목도 받지 못했다. 

이날 경찰은 체육관 인근에 병력을 다수 배치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또한 사전에 90도 단체인사 등 일반인에게 위협감을 줄만한 행동들을 자제해 줄 것을 조폭들에게 당부했다.
이에 결혼식은 별다른 사고 없이 마무리 됐으나 소식을 접한 일반 시민들은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최근 들어 조폭들의 세력 과시가 자주 언론에 보도되는 등 조폭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골목으로 들어간 조폭들
조직폭력에 대한 처벌 수위가 강화되며 조폭들의 행동양식에도 변화가 찾아 왔었다. 지난날처럼 일반인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거나 금품을 갈취하기에 제약이 생기자 다른 수단을 동원 불법적 돈벌이를 자행해 왔던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주가조작 등 조폭들이 기업경영에 직접 나섰다는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스마트해진 조폭’이라며 이들의 불법행위가 적발하기도 어려운 첨단을 달리고 있다며 우려감을 표했다.

그러나 최근 들려오는 소식들을 취합해 보면 조폭의 행태가 다시금 복고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최첨단 범죄를 일으키는 조폭들이 창궐하고 있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지난날처럼 유흥업소 등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고 돈을 버는 조폭들이 버젓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지난해 장례식 집단 패싸움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천 조폭들의 경우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활동으로 그 세가 위축되고 있다. 그런데 경찰에 붙잡힌 이들의 죄목을 살펴보면 조양은·김태촌이 유명세를 떨치던 지난 1970~80년대 조폭문화와 판박이라 할만하다.
그중 인천 내 최대 파벌을 자랑하는 부평식구파의 경우 두목이 운영하던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자 낙찰을 방해하고자 법원에 집단으로 찾아가 위화감을 조성하는가 하면, 해당 매물을 낙찰 받은 사람을 찾아가 폭행하고 수천만원에 이르는 이사비용까지 뜯어냈다.
또한 이들은 인천 일대 유흥업소에 조직원들을 상주시키며 보호비 명목으로 10억원에 가까운 돈을 갈취했으며, 인근 지역 고등학교 퇴학생과 일진들을 조직원으로 받아들인 뒤 세력 과시에도 자주 나선 바 있다.

구태의연한 조폭들의 행태는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최근 경기지방경찰청에서는 조선족과 손잡고 중국인 상인들을 협박하고 돈을 뜯어낸 조폭들이 검거됐으며, 대구와 부산 그리고 인천 등지에서는 노래방 업주와 종업원을 협박하거나 폭행한 조폭들이 줄줄이 붙잡혔다.

이와 관련 한 사회문제 전문가는 “조폭 근절에 대한 정부의 인식 부족이 다시금 조폭 문제가 불어왔다”며, “한시적인 단속으로는 이들을 뿌리 뽑기 어려운 만큼 제도적 개선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 지적했다.
또한 이 전문가는 “첨단 범죄에 연루된 조폭들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피해도 크지만, 일반 서민들이 직접 당해야 하는 이들 조폭들의 폭력행위에 대해서 더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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