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호 기자

[월요신문=김덕호기자] 현대중공업 노조의 임금 및 단체협상이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하계 투쟁이 추계 투쟁(추투; 秋鬪으로 이어졌지만 아직 이렇다 할 발표가 없다. 큰 이변이 없다면 연내 타결은 어려울 듯 보인다.

근로자는 회사 외에는 달리 갈 곳이 없고, 회사는 이들을 유지하면서 수주 전선에 뛰어들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문제다. 특히 해양사업부 유휴인력 1200명에 대한 생각이 그렇다.

회사측은 높은 임금에 대한 부담, 유휴인원 관리에 대한 어려움이 플랜트 수주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쟁국인 중국이나 싱가포르가 저임금을 배경으로 공격적인 영업을 펴고 있는 데 반해 우리 조선사들의 고용 구조는 다소 경직적인데다 고임금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인력구조와 임금 체계, 노동 생산성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에 무급휴직과 유급휴직 안을 제출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불법고용이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것도 이런 이유다.

강성 노조와의 협상에서 힘을 쓸 수 없기에 고임금인 정직원들의 고용은 유지하고, 사회적 지위가 약한 협력사 직원, 비정규직들을 저가에 이용한다.

고용과 해고가 자유롭고, 낮은 임금으로도 이용할 수 있는데다 위험의 외주까지 가능하다. 기업 입장에선 불법 고용의 유혹을 떨쳐내기 쉽지 않다. 정부도 모를 리 없다. 다만 알며 쉬쉬할 뿐.

근로자들은 기약 없는 유급휴직이나 무급휴직은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본다. 복귀 시기가 1~2년으로 길어질 경우 자칫 '고난의 행군'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휴직에 대한 거부감이 큰 이유다.

무엇보다도 현재 조건에 계속 남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긴 기간 습득한 기술과 노하우를 사용하며 고임금을 받을 수 있는 곳은 현재의 직장이 유일해서다. 자칫 회사에서 떨어져 나갈 경우 위에 언급한 협력사 직원, 비정규직이 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노조라는 방패도 없다.

그들이 생각하는 현대중공업 정규직과 협력사 직원은 사회적 지위도 다르다. 회사를 나오는 순간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하지만 노동강도는 높은 협력사 직원 또는 비정규 인력이 되야 한다.

정부와 기업은 노동 유연성을 말하지만 현실에서 협력사 직원과 비정규직 근로자는 여전히 불안과 차별의 대상이다. 이들이 타협 없이 강경 투쟁에 나서는 이유다.

지난 4월 STX노조의 선택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회사와 채권단은 '비정규직 전환 및 3년간 임금 80% 보장' 또는 '정규직 유지 및 임금 60% 삭감'의 조건을 제시했고, 노조는 후자를 선택했다.

이에 더해 ▲5년간 기본급 5% 삮감 ▲600%인 상여금 300%로 축소 ▲매년 6개월간 무급휴직도 받아들였다.

집착이다 싶을 정도로 정규직을 선호하는 현실을 만들어 낸 것이 기업과 노조만은 아닐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을 바라는 취업 준비생, 등급과 계급을 나누는 데 익숙한 기성세대, 과도하게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 자기 논리에 갇힌 노조 등 각각의 집단이 주장하는 정당성이 충돌해 괴리된 상황을 만들어 냈다.

현대중공업 사태에 울산시장이 나섰고, 울산 동구를 기반으로 하는 국회의원도 의견을 냈다. 다만 정치권 개입으로 문제가 극적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크지 않다. 정치권은 문제 해결에 대한 의견을 내기 전에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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