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정국 반전 드라이브가 본 모습을 드러냈다. 이 대통령은 최근 비서관 회의를 포함, 여러 자리를 통해, 정치권과 당이 개헌에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당부했다. 외형적으로는 단순한 국정 최고 책임자의 말이지만, 정국의 향배와 결부될 경우, 결코 예사롭게 만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청와대는 물론이고, 정치권을 감싸며 돌아가는 정황은 이 뿐 아니다. 특히 최근, 대법원 확정 판결을 통해 지사직과 의원직을 상실한 이광재, 서갑원 두 인사의 경우와 같이 여전히 박연차 게이트의 후폭풍이 유효하다는 것. 문제는 왜 하필 이 시기에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느냐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시기와 결과에 비춰, 적어도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라는 시각이다. 정가에서는 이보다 한술 더 떠 두 사안이 모두, 이 대통령의 정국 돌파 드라이브에 속하는 것 아니겠냐는 의견을 내놓는다. 그도 그럴 것이 전문가들은 올해 들어, 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기정사실로 바라봤다. 집권이 후반기로 접어드는 것과 아울러, 차기 대권가도에 불이 붙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는 자연히 현직엔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때마침 아덴만의 군사작전이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여론의 반응도 비교적 호의적으로 바뀌는 등, 정면 돌파를 위한 제반 여건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 대통령의 승부수를 살펴본다.

 


 

지난 22일, 전격적으로 단행된 아덴만에서의 쾌거는 가뜩이나, 어려움에 봉착한 이명박 대통령엔 그 나마의 여명으로 여겨질 법하다. 이는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반으로 급속히 옮겨가던 권력 누수 현상이 일시 정지 상태에 놓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아덴만 여명, MB에도 여명

 

실제로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던, 삼호주얼리호에 대한 구출 작전은 외국의 전문가들조차, 불가능하게 여길 만큼, 성공 가능성이 희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가 작전의 성공을 위해, 출입 언론사에까지 관련 내용의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엠바고’를 요구했을 정도다. 이를 어긴 일부 언론의 경우, 청와대 출입이 중지되는 등 물의를 빚기도 했다. 청와대가 작전과 관련해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웠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욱 아덴만의 작전 성공은 이 대통령에게 지난해의 패착을 만회하는 기회를 던져 주기도 했다. 이는 한해 동안,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이렇다하게 대응을 못했던 사례와 크게 대비되는 것으로 ‘자국민 보호’라는 명분이 정치적으로 효과를 발휘했다는 분석이다.

 

작전이 성공으로 돌아가자 이 대통령도 이에 대해서는 고무적인 반응을 여과 없이 드러낸 바 있다. 작전 성공 소식을 전해들은 이 대통령은 이례적인 특별 담화를 통해, “청해부대 해냈다. 선원 전원이 무사히 구출됐다”고 말하며, 작전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도 “국방부 장관에 인질구출작전을 명령했고, 군도 완벽하게 작전을 수행해냈다”고 밝혔다. 특히 이 대통령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다”면서 “이를 위협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부에서 제기된 ‘국민도 지키기 못하는 정부’라는 비판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전후 사정이 어떠하건 이번 작전의 여파는 이 대통령엔 어려워만 가는 정국에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여겨지기에 충분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 정국에는 크게 두 가지의 메가톤급 탄두가 투하되면서, 여의도로 대표되는 정치권엔 일대 혼란마저 초래되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개헌이다. 개헌은 이미 이 대통령의 복심인 이재오 특임 장관을 통해, 지난해부터 공론화 된 바 있다.

 

개헌에 불붙인 주류

 

그랬던 것이 올해 들어,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재차, 논란으로 떠오르면서 최근엔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치권의 개헌 논의에 불을 붙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얼마 전에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역할에 혼선이 있는 만큼 그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개헌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여권 고위인사의 입을 통해 전해진 이 말에 대해 청와대는 논란의 여지에도 불구, 부인은커녕 오히려 대통령의 의중이 맞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개헌을 통해, ‘옥상옥’처럼 돼 있는 사법부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취지 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개헌에 대한 입장은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이 대통령은 이전에도, 한나라당 지도부와 가진 이른바 ‘안가 회동’을 통해, 개헌의 당위성은 거두절미한 채 ‘개헌을 한다면’으로 운을 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도 이 대통령은 사법부의 통합이나, 역할 조정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는 게 참석자들의 말이다. 이 대통령은 이후에도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김황식 국무총리에게도, 개헌의 필요성을 당부했다.

 

마치 융단과도 같은 이 대통령의 언급이후, 한나라당은 지도부에서부터, 개헌과 관련한 여러 의견을 나왔다. 그러나, 초기에는 여전히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바 있는데, 특히 홍준표 최고위원은 “3년 동안 개헌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미루어 오고 있다가 임기 말에 와서 개헌문제를 뒤늦게 다루려고 하는 것이 의문스럽다”고 말했고, 나경원 최고위원은 “개헌이 사실상 어려운 이 시기에 한다는 것은 약속을 지키려는 의도가 아니라 다른 의도로 보일 수 있다. 지금 개헌논의를 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하며 조심스런 반발의사를 피력했다.

 

그럼에도 불구, 이 대통령이 중심이 된 정치권의 개헌 논의는 쉽게 멈출 것 같지 않아 보인다. 한나라당은 최근 지도부를 중심으로 당내에서 만이라도 개헌 논의를 활성화할 수 있는 ‘개헌 특위’를 만들자는 입장을 내놓았고, 당초, 같은 사안을 논의하려던 의총을 빠른 시일내 열어 이들 문제를 공론화하기로 했다.

 

여기에 더해 그간 개헌 전도사라는 말을 들으며, 당 안팎을 바쁘게 뛰었던 이재오 특임 장관도 각종 정책 연구 조직을 활용해 개헌논의를 활성화하는 등, 여론 몰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반발 세력엔 ‘박연차 철퇴’

 

개헌이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정치권에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면서, 각 정당과 정파들의 목소리도 차츰 볼륨을 키우는 양상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친이계 주류의 바램과는 달리, 당장, 당내 친박계는 이 대통령과 친이 주류의 개헌 제기에 강한 의혹을 드러내며 반발했다.

 

친박계 원로인 김용갑 고문은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말하며, 친이계의 개헌 논의에 반발했다. 김 고문의 의견처럼 친박계 내부에서는 최근 불거진, 개헌 논의가 자칫 차기 대권가도에 변수로 작용하지 않을까하며, 의심을 거두지 않는 눈치다.

 

민주당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손학규 대표도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개헌 논의를 하라고 지시해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하며 “민생은 안챙기고, 엉뚱한 일만 하고 있다”고 비판을 가했다. 손 대표는 개헌 논의가 중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개헌으로 정국이 들끊는 마당에 이번엔 또 하나의 뇌관이 터지면서 정국의 향배는 짐작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게 됐다. 바로 박연차 게이트에 따른 민주당 소속 이광재 강원도지사와 서갑원 의원 파장이다. 두 인사는 최근 열린, 대법원 확정 판결을 통해 각각 유죄형을 선고받아 지사직과 의원직을 잃게 됐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결심공판이 논란으로 떠오른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와는 반대로 같은 날 열린 결심 공판에서 여권 소속 인사들이 대거 무죄 판결을 받은 것. 형평성과 아울러 모종의 정치적 의혹이 나올 법 한 대목이다.

 

초유의 군사작전을 성공으로 이끌고, 주류로선 숙원처럼 여겨지는 개헌에 불을 붙이는 한편, 반발 세력엔 철퇴가 날아든 형국이라는 게 정가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으로 자못, 이후 정국의 향배에 귀추가 모아지는 대목이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