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이 정치권에 다시 한번 메카톤급 광풍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엔 주도하는 쪽이나, 반발하는 쪽이나 그야말로 끝장을 봐야하는 입장이라는 지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는 현 18대 국회의 임기가 사실상 마무리되는 해다. 연말을 기해 정치권은 내년 총선에 적지 않은 힘을 쏟을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개헌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세력이 소위 친이명박계로 분류된 한나라당의 주류라는 점은 개헌의 성사 여부와 관련, 시사점을 던진다.

 

친이계가 다수를 이룬 원내라는 것. 개헌을 공론화해 추진할 경우, 수적 우위를 앞세워 실현이 가능하다는 관측이다. 반면, 이를 바라보는 반발 측의 입장은 다르다. 특히 그간 친이계와 대립각을 세워온 친박계 등 비주류진영의 생각은 이들과 판이하다. 왜 하필 이 시점에서 개헌을 공론화 하느냐는 불만마저 터뜨리며 개헌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종전 야권의 입장도 크게 변한 것이 없다는 전언이다. 손학규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도 최근 불거진 친이진영의 개헌론에 촉각을 세우며 의도 파악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야권의 기존 입장 역시, ‘이번 임기 내엔 절대 불가’라는 시각이다. 개헌 공론화에 따른 각 정파들의 입장과 제기 배경을 살펴본다.

 


 

여의도엔 그야말로 ‘블랙홀’로 여겨져 온 개헌 논란에 불이 붙었다. 기존 정치권의 일부 인사와 한나라당 주류에서만 흘러나오던 상황과도 판이하게 구별된다. 주도를 하는 측이나, 반발을 하는 측, 모두 그간의 물밑에서만 오가던 생각을 수면위로 끄집어내고 있다.

 

친이계의 마지막 카드 '개헌'

 

이번 논란과 관련해, 특히 촉각이 선 곳은 한나라당이다. 주도와 반발이 당내에서 동시에 발생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시각이다.

 

물꼬를 튼 쪽은 그간 개헌을 부르짖어온 친이명박계 주류다. 이중 이재오 특임장관의 목소리가 유독 두드러진다. 이 특임장관은 이미 지난해 장관 임명 직후부터, 개헌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지난해 말에는 친이계의 세력 분포를 따져, “연내 개헌도 가능하다”는 말까지 했다.

 

그의 보직이 대통령의 특명을 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말이 곧 대통령의 의중이라는 것이 상식이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그의 정치적 입지도 그 말에 무게감을 더 한다. 정권 2인자로 이명박 대통령의 복심이다. 이 특임장관의 정치스타일도, 이번 개헌론이 한번 타고 말, 모닥불이 아닐 것이라는 점을 잘 말해준다. 불도저의 동력이라는 평가가 그렇다.

 

이유를 떠나, 정치권은 이제 바야흐로 개헌이라는 부담스런 이슈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친이명박계로 분류된 주류진영은 이를 위해 모임을 갖고 별도의 주력군을 편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엔, 이재오 특임장관은 몰론이고 지난 정권 창출에 기여했던 정두언 최고위원을 비롯해,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 등 ‘충성파’ 40여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엔 친이 소장파 중 한명인 정태근 의원이 당 홈피를 통해, 개헌 공론화를 역설하는 글을 올려 주목을 끌었다. 그는 ‘개헌에 대한 실용적 접근을 제안 드립니다’는 제하의 글을 통해 “논란 끝에 당이 개헌 여부를 공식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하며 “진전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또 다시 계파간의 대립을 노정해 국민에게 실망을 안길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글에서 개헌의 논의에 대한 여부를 넘어, 논의의 방법을 제안했는데 “(소속) 의원들이 개헌의 구체 내용을 미리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얼핏 들어, 이 말은 개헌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듣자는 말로, 들리기도 하지만 입장에 따라서는 논의 자체를 이미 기정 사실화 하는 정치적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친이계가 개헌을 통해, 정국에 강공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도 이것이다.

 

문제는 이들의 이러한 이른바 ‘개헌 드라이브’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느냐다. 더욱, 개헌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개헌을 거론한 친이계엔 더없이 아쉬운 대목이긴 하지만, 개헌론에 대한 반발이 계파를 초월해, 지도부에서조차 이견이 되고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차기 힘 빼기? 의혹도 커져

 

실제 최근 한나라당 지도부의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개헌을 둘러싼 위원간, 입장차는 여실히 드러나 향후, 개헌 드라이브의 명운을 일부 엿보였다. 이 자리에서 홍준표 최고위원은 “18대 국회에 들어 3년 동안 개헌문제가 여야에 본격적으로 거론된 일이 없이 오다가 임기를 1년 남겨둔 상황에서 개헌문제가 불거졌다”며 “정부 임기가 후반기에 돌입한 지금에 와서 차기주자들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개헌문제를 다뤄 과연 성사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사실상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나, 반발 의견은 홍 최고위원만은 아니다. 자리를 같이했던, 나경원 최고위원도 홍 최고위원의 말에 공감을 드러내며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나 최고위원은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면서도 “개헌이 사실상 어려운 시기에 한다는 것은 다른 의도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개헌논의는 매우 부적절하다”는 말도 했다.

 

반발이 여기서 그치면, 그나마 사정은 좀 나을 듯 하다. 그러나, 친이계의 공론화에 반발한 측은 이들 말고도, 더 있다. 원조 소장파로 알려진 4선 중진 남경필 의원도 이재오 특임장관과 친이직계를 향해 “임기 말이 가까워 오면서 이런 얘기를 하게 되면 마치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이번 임기 내에 될 거냐는 현실성은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개헌을 사이에 둔, 한지붕의 여러 목소리다.

 

하지만, 친이계의 개헌 드라이브가 그칠 것이라고 내다보는 견해는 없다. 이는 현행 정치지형에서 그간 정권을 쥐고 주류로 성장해온 친이계의 입장을 살피면 어렵지 않게 드러난다. 당초, 개헌이 불거질 당시 친이계를 포함한 복수의 의견은 권력구조를 내치와 외치로 나누는 이른바 ‘분권형’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이는 향후 정권을 쥐려는 대권주자들의 입장에선 수용하기 힘든, 제안이라는 것. 특히 친이계는 임기가 중반을 넘은 시점에서조차, 현행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항할 대항마를 갖지 못했다는 점에서, 차기를 걱정해야하는 입장에 놓이게 됐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여기에 친이계가 개헌론을 부각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정국 주도권이다. 이번 개헌이 대통령의 임기를 포함해 권력 구조 개편이 포함된 만큼, 공론화될 경우 정치권은 급속히 개헌 정국으로 빨려들 수 밖에 없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원내대표 당시인 지난 2009년 개헌을 일러 ‘이슈의 블랙홀’이라고 명명할 정도로 커다란 파괴력을 인정한 바 있다.

 

따라서 갈길 바쁜 친이계로선 개헌의 공감대와 당위성이 넓게 포진한 올해를 개헌 공론화의 최적기로 본 것으로 관측된다.

 

박근혜 전면 반발 불 보듯

 

이에 반해, 위험 부담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친이계는 당장, 당내 반발여론에 부딪히는 장애물에 맞닥들인 만큼, 향후 드라이브가 제 역할을 할지에 벌써부터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 당내 일각의 지적처럼 자칫 이번 개헌론이 계파 갈등의 도화선이라도 되는 날엔, 여권 분열이라는 극심한 후유증도 맞아야 한다. 정국 주도권은 고사하고, 있던 주도권 마저 놓칠 수 있는 위험성도 다분하다.

 

그런데 이러한 두 가지 휘발성 강한 우려가 일찌감치 드러나고 있어, 주도측의 입장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향후 개헌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반발력이 가장 강한 것으로 평가되는 박근혜 전 대표를 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는 친이계의 개헌 공론화에도 불구, 여전히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전통적 보수 색채로 박 전 대표의 뒤를 받혀온 김용갑 상임고문은 “왜 하필, 이 시점에서 개헌이 논의되느냐”고 불만을 드러내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김 고문은 “개헌은 이미 낙동강 오리알”이라고 표현하며 “천지 개벽이 되지 않는 한 개헌은 가망 없다”고 단정하기까지 했다.

 

친박측의 입장에서 당장, 개헌을 논의하기란 여간해선 쉽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우선, 올해 두드러질 것으로 보이는 대권구도에 기인한 바가 크다. 정파를 떠나, 여야를 막론하고 대권 경쟁에 불이 불을 것이 뻔한 마당에 굳이 논란이 될 자명한 개헌에 발을 담글 이유는 없어 보인다.

 

더욱, 친이계가 그간 주장해온 분권형이라면 더 그렇다. 대권 경쟁에서 부동의 수위를 고수하며 보기에 따라서는 대권 고지가 육안에 들어온 친박계가 나서서 제 살을 깎아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용갑 고문도 강한 의구심을 드러내며 “만일 이원집정제(분권형)로 권력 구조가 바뀌면 국민들이 선출한 대통령은 권한이 없는 허수아비 대통령이 된다”며 “우리가 누구를 위해 개헌을 하자는 것인지 의심도 간다”고 말했다.

 

한편 친이계가 외곽조직을 통해, 개헌 공론화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정치권은 당분간 개헌론으로 들끓을 전망이다. 하지만, 반발의 강도도 여간해선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여 양측의 힘겨루기에 귀추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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