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국격 손상되지 않도록 처리하라” 외교부에 지시

지난 2015년 6월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한일 현인회의' 대표단을 접견하고 있다. 2015.06.01./사진=뉴시스

[월요신문=김예진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현직이던 2015년, 일본 고위 인사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판결을 방치해선 안된다”며 압박을 가한 사실을 검찰이 확인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나라 망신이 안 되도록, 국격이 손상되지 않도록 해당 소송을 처리하라”고 외교부에 지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법조계는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이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에 이 같은 정황을 적시했다.

해당 발언은 한일 양국의 정·관·재계 원로들로 이뤄진 ‘한일현인(賢人)회의’의 일본 측 인사들이 청와대를 방문해 박 전 대통령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국 측에는 이홍구 전 국무총리, 김수한 전 국회의장 등으로 구성됐고 일본 측 인사로는 모리 요시로 전 총리, 사사키 미키오 일한경제협회 회장, 가와무라 다케오 전 관방장관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모리 전 총리 등은 박 전 대통령에게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이대로 방치해선 안되고 정치적으로 해결해야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당시 청와대 면담에 참석한 인물들의 메모 등을 통해 이런 발언이 오간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2012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에서 원고들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후 열린 파기 후 항소심에서는 지난 2013년 7월 대법원 취지 판결에 따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고 이에 일본 기업 측이 소송에 이의를 제기해 다시 대법원으로 올라와있는 상태였다.

해당 판결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 모리 전 총리 등은 한국 정부에 적극적으로 조치하지 않으면 한일관계가 파탄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은 것.

이는 일본 측 인사가 한국 정부에 개별사건 재판에 개입하도록 요구한 것으로 심각한 외교적 결례를 범한 발언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외교부 측에 강제징용 소송 재판을 두고 “국격이 손상되지 않도록 처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기업 측에 유리한 판결이 내려지도록 대법원에 의견서 제출 등을 하도록 하는 취지다.

다만 당시 외교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 체결’로 악화된 여론과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해 의견서 제출을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조사 결과 박 전 대통령은 다음해 4월 “모든 프로세스를 8월 말까지 끝내라”고 재차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외교부는 법원행정처와 협의해 의견서 제출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일본 기업 대리인인 김앤장 측과 연락을 취해 의견서 제출 촉구서를 접수토록 했다.

검찰은 이 같은 과정을 거친 뒤 양 전 대법원장 등 당시 사법부 고위 법관들이 일제강제징용 소송 재판에 개입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오는 23일에 열릴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서 한일현인회의와 박 전 대통령 등과의 만남 등 구체적인 정황 증거를 설명할 계획이다.

그동안 검찰이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인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수사에 주력해온 만큼 이번 의혹이 큰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의 구속 여부는 임 전 차장과의 공모 관계와 직접 재판에 개입한 정황 등의 여부에 따라 판가름 날 가능성이 커 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반면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 개입 혐의 등을 모두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앞서 임 전 차장이 이미 구속돼 형평성 측면도 지적되고 있어 구속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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