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예진 인턴기자

[월요신문=김예진 기자]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비서 성폭행 혐의로 지난 2일 열린 항소심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특히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한 이번 판결은 기존 가해자 중심의 재판과 달리 피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서 이번 사건은 지난해 3월 김씨의 폭로로 알려져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안 전 지사는 차기 여권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고 사회 전반 유력인사들과 인적 네트워크가 구축돼있는 등 영향력이 강한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안 전 지사는 과거 자신의 SNS를 통해 양성평등에 대한 글을 게시하는 등 ‘뭔가 다른’ 행보를 보여줬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안 전 지사의 위력 행사 여부였다. 지난해 8월 열린 1심에서는 안 전 지사가 위력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자리에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실제 위력을 행사하진 않았다고 판단,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김씨가 통상적인 ‘피해자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진술 신빙성도 믿기 어렵다”고 봤다. 이 판결은 여성계를 비롯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성폭행 피해자는 꼭 피해자다워야 한다는 편협하고 왜곡된 관점이라는 것.

그러나 이후 열린 항소심에서는 판단을 달리했다. 법원은 안 전 지사가 '위력에 의한 상하관계'를 이용해 김씨를 간음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피해자답지 않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1심을 뒤집고 실형을 선고했다.

'성인지 감수성'은 사회에서 불거지는 여러 문제에 대해 성차별적인 요소를 찾아내는 민감성을 가리키는 의미로 통용된다. 성별이 다른 데서 비롯되는 상황에 대한 이해도 차이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법원은 성범죄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거나 피해자다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법원의 이번 판단은 남성 중심적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피해자다움’을 강요한 것에 대한 반성적인 모습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성범죄 피해자들의 성향과 처해진 상황에 따라 대처 양상이 다를 수밖에 없음에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피해자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이 존재한다. 또 피해자들은 ‘정형화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심각한 2차 피해에 시달리게 된다.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이 깨지지 않는다면 이 같은 피해는 계속될 것이다. 이번 판결이 향후 유사 판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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