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지현호 기자] 미국 정부가 수입차에 고율 관세 부과 계획을 추진 중이다. 최대 25%의 관세가 부과될 경우 국내 완성차 업계는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일부 기업은 존폐기로에 설 수도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가 감지되지만, 정부는 낙관론을 내놓고 있다. 답답하다는 반응이다. 자동차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주 현지 언론에서는 미국 상무부가 자동차 수입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는 결론을 낸 보고서를 백악관에 제출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17일(현지시간)에는 악시오스·로이터통신 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수입 자동차 고율 관세 부과 계획은 일정 기간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보고서가 미국이 진행 중인 무역협상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 관세 카드를 이용해 끊임없이 주변국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수입산 자동차와 자동차부품에 관세 부과가 이뤄질 경우 지난해 철강 품목처럼 면제국에 속할 것이란 낙관론을 내놓고 있다. 한미FTA 개정에서 철강 품목에 쿼터제를 도입한 대신 추후 이뤄진 무역확장법 232조에서 면제국으로 한국을 지정한 선례가 있어서다.

미국 자동차연구센터에서도 최근 자동차·자동차부품 관세 부과 여부를 5개 시나리오별로 분석한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캐나다·멕시코와 함께 부과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긍정적 시각을 내놨다. 미국의 국가안보위협 조사는 유럽연합과 일본이 타깃이란 것이다.

이러한 낙관론에 대해 자동차 업계는 안심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전문가들도 민관외교를 총동원해야 할 시점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자칫 국가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국내 자동차 업계가 처한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2017년 기준 국내 완성차업계가 미국에 수출한 물량은 약 85만대다. 현대·기아차는 물론 한국GM, 르노삼성자동차도 미국에 차량을 수출하고 있다.

특히 한국GM과 르노삼성은 미국 수출길이 막힐 경우 존폐기로에 서게 된다. 이미 산소호흡기를 쓰고 있는 한국GM은 지난해만 트랙스 14만여대를 미국에 수출했다. 지금도 생산량 감축 등 가동률에 비상이 걸린 한국GM에게 미국 관세 부과는 그야말로 치명타다.

르노삼성차는 북미 수출용 닛산 로그에 사활이 걸려 있다. 오는 9월이면 현재 계약된 물량이 마무리돼 후속 차량 배정을 반드시 따내야 한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의 생산량 중 닛산 로그 비중은 50%에 달한다. 존폐를 거론할 수 있는 수준이다.

현대·기아차가 미국에 수출하고 있는 물량도 총 60만대에 이른다. 미국 수출길이 막히면 공장 한 곳은 문을 닫을 수도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부품사를 비롯한 협력사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자율주행차, 친환경차 등 첨단 기술 부품에만 선택적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또 연쇄적으로 관련한 각종 후방산업에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한 자동차 업체 관계자는 "최근 2차 북미정상회담 등 각종 이슈가 난무하면서 미국의 자동차 관세 부과 움직임이 이목을 덜 받고 있는 것 같다"며 "자동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차 판매가 주는 것이 아닌 그에 관련한 수없이 많은 기업이 다 힘들어질 수 있고 이는 결국 경제성장에도 타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이 국가 안보를 거론하며 자동차 산업을 카드로 꺼내 든 것은 그만큼 자동차 산업이 한 국가의 경제에 미치는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되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실현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대응 수위를 높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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