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이명진 기자] 식품업계가 저배당·오너리스크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오랜 백기사 역할을 자처해 온 HDC현대산업개발이 최근 삼양식품 오너 일가에 불리한 주주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혀 예기치 못한 백기사의 공세에 맞닥드려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된 것.

최근 현대산업개발은 다음달 22일 열리는 삼양식품 정기주주총회에 ‘횡령·배임 혐의로 금고 이상 형을 받은 이사 해임’을 골자로 한 정관 변경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화된 윤리경영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 주주로서 역할을 다했단 게 그 이유라지만 정황 상 의문이 따라 붙는 건 당연지사.

그도 그럴 것이 현재 현대산업개발은 삼양의 지분 16.99%를 보유하고 있는 2대 주주다. 이런 상황 속 이번 주주제안 안건이 주총을 통과하게 되면 횡령 혐의로 유죄를 받은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과 그의 아내 김정수 사장이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야 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앞서 지난달 25일 서울북부지법 형사11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기소된 전 회장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또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정수 사장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바 있다. 이는 지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계열사로부터 납품받은 포장 박스·식품 재료 가운데 일부를 자신들이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로부터 납품받은 것처럼 허위로 꾸며 49억원을 횡령, 개인주택 수리·카드 대금 등에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가 적용됐기 때문.

물론 이번 제안이 구체적으로 전 회장만을 타깃으로 한 것인지 김 사장까지 포함하는 것인지는 아직 확인 된 바가 없다. 다만 그간 삼양식품 오너 일가의 든든한 백기사였던 현대산업개발이 주주제안을 한 사실 자체가 오너 일가와 등을 돌린 행보가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레 나온다. 이유인 즉 현대산업개발과는 과거 선대 회장 때부터 막역한 관계를 유지해 왔던 터. 실제 고(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과 고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은 같은 이북 출신이란 인연으로, 누구보다도 끈끈한 관계를 자랑해 왔다. 일례로 고 정 회장의 경우 IMF 외환위기 이후 경영난을 겪던 삼양식품 지분 25%를 매입해 삼양의 백기사 역할을 톡톡히 해낸 바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이번 주주제안이 전 회장의 오너리스크 여파에 따른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근래 수년간 ‘불닭볶음면’ 등의 성공으로 지난해 급등했던 삼양식품 주가가 최근 반토막이 나며 2대주주로서 현대산업개발을 이끄는 정몽규 회장이 우려의 시각을 가졌다는 것. 다만 실제 현대산업개발의 정관 변경 제안이 주총을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전 회장 등 특수관계인 지분이 47.2%의 지분율을 보유하고 있어 사실상 현대산업개발이 승리할 가능성은 낮다는 의미다.

오너일가의 일탈로 업계 전반에 주홍글씨가 새겨지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외부 견제가 쉽지 않다보니 내부거래·갑질 등의 병폐가 지속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게 현실이라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기업 가치는 물론 오랜 공조 관계마저 깨뜨릴 수 있단 지혜 하나쯤은 기억해 두는 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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