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를 받는 가수 정준영(왼쪽)과 투자자에게 성 접대 알선한 혐의를 받는 빅뱅 전(前) 멤버 승리(29·본명 이승현)가 15일 새벽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밤샘조사를 받은 후 귀가하고 있다. 2019.03.15./사진=뉴시스

[월요신문=성유화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고 자유한국당이 막고있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이 ‘버닝썬 사태’로 위기를 맞았다.

성관계 동영상 불법촬영과 유포 혐의를 받는 가수 정준영이 포함된 단체 카톡방에서 “‘경찰총장’이 우리들을 봐주고 있다”는 메시지가 오가면서 고위급 경찰 유착 정황이 포착됐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 13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경찰총장'이 우리들을 봐주고 있다는 내용의 메시지가 오고간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아이돌 그룹 빅뱅의 멤버 승리와 가수 정준영 등이 포함된 단체 카톡방에서는 2016년 7월께 '경찰총장'이 언급됐다. ‘경찰총장’이란 직급은 없는 직급이지만 유사한 단어인 ‘경찰청장’이 있는 걸로 보아 사실상 고위급 경찰 유착 정황이 드러난 셈이다.

아울러 경찰은 정준영과 친분이 있는 가수 최종훈에 대해 "'(최씨의) 음주운전 보도를 팀장에게 무마해 주겠다'는 메시지가 있었다"며 "A씨는 추후 '팀장이 생일 축하한다고 전화 왔다'는 내용의 카톡 대화도 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따르면 대화에 언급되는 '팀장'은 당시 교통수사관 등 경찰관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여야 4당이 논의를 벌이고 있는 검찰 개혁법안의 향방이 위태로워졌다. 검찰 개혁법안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이 핵심이다.

공수처란 전직 대통령, 국회의원, 판검사,지방자치단체장, 법관 등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의 비리를 수사, 기소할 수 있는 독립기관이다. ‘검경수사권 조정’은 말 그대로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을 조정하는 것으로, 쉽게 말해 현재 검찰이 갖고 있는 독자적 수사권을 경찰과 나누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검경수사권 조정과 관련 검찰의 권력 비대화를 줄이고, 경찰 조직을 일부 개편하면서 경찰에 수사권을 부여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같은 유착 의혹이 팽배한다면 경찰을 신뢰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나 자유한국당에서는 이같은 검찰 개혁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자유한국당 김영우 의원은 지난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버닝썬 사태에서 일부 경찰이 범죄집단과 밀착해 범죄를 은폐하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어 폭행까지 했다”며 "정부⋅여당은 이런 상황에서 자치경찰제를 하겠다고 하는데, 경찰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한 자치경찰제 도입 후 지방유지, 토호세력과 경찰이 더 밀착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이채익 의원도 "경찰 고위 인사들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는 한 검경수사권 조정은 절대로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대해 “법이나 제도적인 개혁까지 가지 않으면 모두 되돌아갈지 모른다는 것이 참으로 두렵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5일 청와대에서 직접 주재한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 “(권력기관 개혁을 위해) 법·제도까지 개혁하지 않으면 물을 가르고 간 것처럼 분명히 가르고 나갔는데 도로 합쳐져 버리거나 당긴 고무줄이 도로 되돌아가버리는 게 될지 모른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입법을 통해 권력기관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항구적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며 “국정원 개혁 법안, 공수처 신설 법안과 수사권 조정 법안, 자치경찰법안이 연내에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대승적으로 임해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국회의 협조를 당부했다.

이어 이번 개혁에 대해 “국정원·검찰·경찰 개혁은 민주공화국 가치를 바로 세우는 시대적 과제”라고 지칭했다. 덧붙여 “(권력기관 개혁은) 정권의 이익이나 정략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국정원·검찰·경찰은 오직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새로 태어난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이 문 대통령을 비롯한 여당 민주당에서는 검찰 개혁법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당을 제외한 야 3당에서도 이와 비슷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민주당과 야 3당은 한국당을 제외하고라도 선거제 개편과 검찰 개혁법을 ‘패스트트랙(신속지정안건)’으로 처리하는 것에 공감했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데드라인’인 15일이 가까워지자 의도하듯 국회 보이콧을 행사했다. 국회 운영위원회는 지난 13일 전체회의를 열고 입조처장‧이 예정처장 내정자 임명동의안을 의결할 계획이었으나 한국당의 불참으로 무산됐다. 앞서 여야 의원들은 당초 11일 운영위를 열고 김하중 입조처장·이종후 예정처장 내정자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방침이었으나, 나경원 자유한국당 대표가 회의 개최를 반대하면서 무산되기도 했다.

게다가 바른미래당 내부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바른미래당은 14일 국회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협상을 위한 당론 확정을 시도했으나 일부 당원들의 의견 충돌로 결론 도출에 실패했다.

다만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해서는 '정치적 중립성·독립성 보장'이라는 전제조건을 내걸도록 합의한 모양새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의총 후 브리핑에서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우리 당이 요구하는 정치적 중립성·독립성 확보 방안을 충분히 담보할 내용을 내일까지 정리해 (여당에) 전달하고 그 부분이 관철되지 않으면 더 이상 패스트트랙 자체도 진행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한국당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바른미래당에게 "지금 여당은 공수처법을 하려고 선거법 개혁을 하는 것"이라면서 "공수처법은 결국 대통령이 공수처라는 또 다른 권력기관을 만들어 이를 통해 모든 권력기관을 장악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15일 오전 국회에서 비상 의원총회를 열고 "바른미래당은 여기서 별로 얻을 것이 없고 패스트트랙을 태우는 것은 여당의 들러리를 서겠다는 것이다. 참여하지 말아달라"며 이같이 호소했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자꾸 공수처를 검찰 개혁의 하나로 이야기하는데, 원래 공수처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최고위층 권력자들에 대한 특별사정기관”이라며 “첫 대상은 대통령과 그 친인척, 특수관계자, 그다음에 청와대 권력자, 국회의원이고 판검사도 대상으로 포함하게 된 것”이라며 강조한 바 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 역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권력에 의한 성폭력 비위를 막아야 한다”고 나섰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경찰이 고위경찰을, 검찰이 고위검찰을 수사해 무혐의 되는 일을 끝내지 못하면 권력을 가진 (이들의) 성폭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표는 "버닝썬, 김학의 전 법무부 장관, 고(故) 장자연씨 사건은 개별의 사건, 이슈로 이슈를 덮기 위해 만들어진 사건이 아니다"라며 "각각의 사건은 성폭력 구조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약물 강간, 죄의식 없는 촬영, 성접대, 혐오와 차별의 인식이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같은 불법이 비호되고 진실이 은폐되는 과정에는 공권력의 조력이 있었다“며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유착관계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그는 '장자연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로 알려진 고인의 동료배우 윤지오씨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동부지검에 설치된 대검찰청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한 사실도 언급했다. 

이 대표는 "(장자연 사건을 증언한) 윤지오는 검찰에 12번 출석했지만 무시당했고 경찰이 김 전 차관을 식별할 수 있는 동영상을 확보했지만 김 전 차관은 무혐의였다. 불법 촬영 연예인도 3년 전 유사 사건으로 무혐의를 받았다"며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지난 세월 공포에 떨며 숨어 지냈다.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면 여성의 절망, 피해자의 고통은 계속 된다"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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