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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맥신코리아 한승범 대표 “이 세상에 해결 못할 위기는 없다”“위기가 발생하면 무엇보다도 차분해져야”
맥신코리아 한승범 대표이사.

[월요신문=고병훈 기자] 지난 2018년은 사건사고가 유난히 많은 해였다. 특히 기업과 관련된 갑질 사건이 홍수 같이 쏟아졌다. 지난해 4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회의 도중 직원에게 물컵으로 물을 뿌린 사건,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폭행과 성희롱 사건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승무원에 대한 갑질과 대림산업 직원 9명의 하청업체에 대한 갑질도 2018년을 뜨겁게 달구는 등 악덕기업인의 민낯이 백일하에 드러난 한 해였다.

기업위기관리 전문기업 맥신코리아 한승범 대표는 올 한해는 이런 사건들이 더 많이 터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기업인의 도덕적 잣대가 더 높아졌지만 회사의 혁신은 더디기만 하다. 그에 비례해 억울하게 매도당하는 기업도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한 대표의 말이다.

광역단체장 선거 사이버팀장, 한양대 연구교수에서 사업가로 변신하는 등 특이한 이력을 지닌 한 대표를 만나 2019년 기업위기에 대한 전망을 들어봤다.

Q. [기업위기관리 전문기업]이 생소할 수도 있는 분들에게 간단히 설명을 해준다면.

A. 맥신코리아는 온라인평판을 관리하고 기업의 위기를 막아주는 회사이다. 개인이든 법인이든 평판(Reputation)이 무너지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 온라인평판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난공불락 같던 대기업이 작은 실수 하나에 무너지는 무시무시한 디지털정글과 같은 세상이다. 디지털정글에서 용서받지 못할 범죄행위나 부도덕한 갑질로 위기에 처하는 기업이 물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2012년 2월 채선당 사건과 2017년 9월 240번 버스기사 사건이 단적인 예이다. 이처럼 억울하게 디지털정글에서 마녀사냥을 당하는 기업이나 개인을 돕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선량한 기업과 개인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A. 제일 먼저 선행 되어야 하는 것은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사건 본질이 무엇이고 앞으로 어디까지 전개될 지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과제이다. 우리의 기본업무는 부정적인 것을 없애고 긍정적인 것을 만드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술적인 접근만 하는 다른 업체와는 달리 우리는 ‘스토리’를 중시한다. 기업과 대표, 그리고 직원들의 스토리를 유기적으로 엮어 만들어낸다. ‘IT+인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Q. 회사를 운영하면서 에로사항이나 힘든 점이 있다면.

A. 회사를 운영하면 힘든 점은 무수히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점은 역시 보안이다. 기업을 위기에서 구하다보면 민감한 정보를 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회사의 모토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이다. 우리가 맡은 회사들의 정보를 단 한 번도 노출 시킨 적이 없다. 그만큼 3중, 4중으로 철저한 보안장치를 만들었다. 또한 아무리 큰 돈을 제시해도 우리의 그릇을 벗어나는 사건은 맡지 않는다. 고객 보호를 위해 우리만의 특별한 보안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이지 않는가?

Q. 반대로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있을 것 같다.

A. 기업위기관리 전문기업을 하면서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 억울하게 마녀사냥을 당하게 되면 사업을 접고 싶은 심정이 든다. 세상 그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이 때 모래에 머리를 파묻은 타조를 꺼내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실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다 우리 회사에 노크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우리의 도움으로 위기에 처한 억울한 회사가 도산하지 않고 지속 성장할 때 정말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Q. 위기에 빠진 기업들을 위한 최선책이 있다면. 또는 예방책이나 극복책이 궁금하다.

A. 위기가 발생하면 무엇보다도 차분해져야 한다. 기업위기관리를 하면서 깨달은 교훈이 있다. 그것은 “이 세상에 해결 못할 위기는 없다”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길이 있다. 위기에 사안별로 대응하는 것은 악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위기가 발생하면 시뮬레이션을 해봐야 한다. 과연 위기가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가? 즉 최악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봐야 한다. 소비자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기업은 파산하고, 회사관계자가 법적 구속되는 등의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리면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러면 장기적 안목으로 담대하게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 위기에 대한 예방책은 백이면 백 모두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예방책은 역시 평소에 잘 하는 것이다. 기업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어떤 기업은 무난히 잘 극복하고, 또 어떤 기업은 거의 파산과 구속까지 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명확한 차이점 중의 하나가 평소에 관리했던 평판의 차이이다. 평소에 선량한 기업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면 언론도 여론도 그렇게 혹독하게 비판하지 않는다. 그래서 평소에 언론과의 관계를 좋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Q.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사이버팀장을 맡은 이력이 눈길을 끈다. 당시 일을 맡게 된 배경이 있다면.

A. 2002년 이회창 대선 캠프에 사이버 팀장직을 제의받았다가 하루 만에 정무직 정치인에게 밀려난 적이 있다.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장면 중의 하나이다. 이 경험으로 4년 뒤인 2006년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김문수 경기도지사 선거캠프 사이버팀장을 다시 맡게 됐다. 선거 사이버 팀장직은 정말 다이나믹하고 재미있는 신세계였다. 당시 캠프에서 제일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할 정도로 온 정열을 쏟아 부었고 다행히 좋은 결과가 나왔다.

알고 있는가? 정치인들은 논공행상을 확실히 한다. 선거 후 보상으로 경기관광공사 한류이사직을 제의 받았다. 하지만 우연히 동시에 한양대 연구교수직의 기회가 생겼다. 연봉이 두 배나 차이가 났지만 명예를 위해 대학으로 갔다. 결과적으로 김문수 캠프는 나에게 아무런 보상도 하지 못했다.

Q. 사이버팀장으로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A. 사이버팀장으로 일을 하다보면 이런저런 사건이 많이 터진다. 예전에 한 선거캠프에서 사이버팀장으로 일할 때 이야기다. 상대 진영의 사이버팀장을 3일 밤낮으로 추적한 적이 있다. 유난히 두뇌가 뛰어나고 전략이 탁월했다. 그를 알아야 그 많은 퍼즐이 풀릴 것 같았다.

누구에게나 글에는 자신만의 패턴이라는 것이 있다. 마치 지문과 같이 유일무이한 것이다. 오랜 추적 끝에 찾은 상대 진영 사이버팀장은 상대 후보자의 가족이었다. 앞으로 그녀가 십여 개의 아이디로 쓰는 모든 글은 사이버팀장의 전략이고 후보자의 마음이었다.

얼마 뒤 우리 진영에 비상이 걸렸다. 새벽에 우리 후보자를 비롯한 모든 수뇌부가 모여 긴급회의를 열었다. 상대 진영에서 우리 후보자에 대한 치명적인 폭로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만약 한다면 누가 나서야 하는지에 대해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다. 후보자가 직접 나서 해명하는 것으로 결론이 날 즈음에 내가 발언권을 얻어 말했다.

“폭로에 절대 대응해서는 안 된다. 상대는 추가 폭로를 준비 중이고 이것은 함정이다.”

결국 우리는 무대응으로 일관했고 선거에서 승리했다. 상대의 추가 폭로를 예측한 것은 전날 상대 사이버팀장이 우리 팬인 것처럼 위장해 쓴 “후보님, 정말 존경합니다. 그런데 왜 폭로에 침묵하세요? 꼭 직접 해명하셔서 진실을 밝혀주세요”라는 댓글 덕분이었다. 이렇듯 선거에서 사이버 전은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

또 한 번은 우리 진영 후보자의 말실수로 비난하는 댓글이 수천 개가 달린 적도 있었다. 이것을 잠재우고 이슈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도 사이버팀장의 역할이다. 정말 창의적인 발상으로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났었다. 당시 후보자의 가족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했는데 결국 좋은 결과가 나와 다행이었다.

Q. 최근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에 대해 쓰신 칼럼을 인상 깊게 읽었다. 이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A. 솔직히 말하면 드루킹이 두렵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이버전을 치러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나름 최고의 전문성을 갖췄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상대가 드루킹 김동원 씨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이버선거 전문가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아주 무서운 사람이다. 김동원 씨는 단순한 사이버전사가 아니다. 그는 고도의 정무적 판단이 가능한 사람이다. 심지어 예지력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이 고도 매크로 프로그램인 ‘킹크랩’까지 갖추었다. 호랑이에 날개를 단 격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만들었다는 ‘안철수는 이명박의 아바타’ 프레임이다. 선거에서 거대한 흐름을 바꾸는 ‘신의 한 수’였다. 이것으로 안철수 전 대선후보는 정치적 생명을 잃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더구나 안 전 후보는 자타가 공인하는 IT전문가이지 않은가?

김동원 씨가 김경수 지사에게 서운해 하고 그 난리를 친 것은 사이버팀장 입장에서 보면 십분 이해가 된다. 그는 자신이 “탄핵을 주도했고 대통령까지 만들었다”고 확신할 것이다. 자신이 역사의 주역이라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김경수 지사의 생각은 달랐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선거는 끝났다. 선거가 끝나면 사이버선거 전문가들은 논공행상에서 배제된다고 느낀다. 드루킹은 사이버상에서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상대이다.

Q. 강단에 계시다가 사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한양대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던 2008년 새벽에 악몽에 시달리다가 깼다. 포목점을 하시는 어머니가 원단을 파는 꿈이었다. 한복집에서 원단을 판다는 것은 망했다는 것이다. 이때 사업을 결심했다. 누구보다 온라인평판관리를 잘하는 장점을 살려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효심이 계기가 되었지만 결국 내가 좋아서 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온라인평판관리 만큼은 최고라고 생각하기에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위기에 빠진 기업이나 사람들을 도와주면 정말 행복감을 느낀다. 이 길이 나의 천직이라고 확신한다.

Q.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적은 언제였으며, 어떻게 극복했는지.

A.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2012년 전후이다. 우선 몸이 엉망이었다. 120kg이 넘는 몸무게였으니 거의 모든 형태의 생활습관병(성인병)을 가지고 있었다. 마음은 더 안 좋았다. 알콜중독, 분노조절장애, 조울증 등 복합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한 것은 희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고 해도 몸과 마음이 안 따라줬다.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을 만한 집중력과 인내심, 그리고 지력이 없었다. 그때 한 말이 “그냥 이대로 살다가 죽지 뭐!”였다. 정말 한심한 상태였고 몸과 마음의 건강이 밑바닥이었다.

몸과 마음에 더해 경제력까지 최악의 상태에 이르자 살고자 하는 근성이 나타났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온라인평판관리였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업계 1위로 올린 것도 사실 온라인평판관리 덕이었다. 새 사업을 시작하고 곧 깨달았다. 120kg의 체구로 새로운 IT사업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시 너무 게으르고 미련해 보이는 외모를 가졌다. 그래서 늘 실패만 했던 다이어트에 다시 도전했고 6개월 만에 45kg을 빼며 대성공했다. 다이어트 성공과 더불어 완벽하게 새로운 사람이 됐다. 몸과 마음 모두 바꿨다. 거의 완벽할 정도로 절제된 삶을 살았고 매일 3시간 이상 독서하는 놀라운 습관을 갖췄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5년 동안 몸과 마음 건강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다.

또 2014년은 나에게 중요한 해이다. 새롭게 태어난 해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바꿨다. 그야말로 아내와 자식만 빼고 모든 것을 바꿨다. 이름, 체중, 생활습관, 철학 등 99.9%를 바꿨다. 심지어 원래는 오른손잡이였는데 지금은 왼손잡이이다. 사업도 프랜차이즈에서 기업위기관리로 전환했다. 체중은 120kg에서 지금은 60kg 후반대이다. 거의 철인과 같은 체력과 상위 0.1%안에 드는 건강을 가지고 있다. 두뇌에도 가히 경이적인 발전이 있었다. 책을 멀리한 과거와 달리 지금은 일 년에 수백 권의 책을 읽는다. 그저 그런 영어실력을 최근 단 3개월 만에 전문적인 영어 원서를 자유롭게 읽고, 오디오북을 청취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지금은 매일 3~5시간 아마존 킨들로 영어 원서 독서를 한다. 이대로 가면 3년 안에 미국인보다 영어를 더 잘할 것 같다.(웃음)

Q. 바쁘게 외부활동을 하다보면 가족들이 서운해 하거나 개인적인 삶도 많이 포기했을 것 같은데 어떤가.

A. 맞다. 가족들이 많이 서운해 했다. 사업을 하다보면 온 신경이 사업에 쏠리게 된다. 가족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많이 줄었다. 또한 개인적인 삶도 풍족하지 못했다. 가치를 돈에 두다보니 가정과 개인의 삶이 풍족할 리 만무했다. 누구나 하는 실수이지만 나도 돈만 많이 벌면 그때 행복이 시작되고 가족에 대한 소홀함, 무관심, 방치 등이 용서될 줄 알았다.

해외펀드 투자와 프랜차이즈 사업 성공으로 나름 돈을 벌었다. 하지만 행복은커녕 가정의 불화가 더 커졌다. 개인적인 삶은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돈은 물질적 풍요 외에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도곡동 아파트, 외제차, 강남 사무실 등으로 남들의 부러움과 질시를 한 몸에 받으며 그것이 행복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허상이었고, 내실은 엉망이었다. 사춘기의 아들과의 관계는 최악이었고 아내의 서운함은 하늘을 찔렀다. 돈을 많이 벌어다주는데 무슨 불만이냐는 식의 나의 사고는 오만과 무지의 극치였다.

사람이 일을 하는 근본적인 목적이 돈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식적인 말이 아니다. 사람이 일을 하고, 삶을 영위하는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행복 추구이다. 돌이켜보면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 가정에 화목이 찾아왔고 관계가 돈독해졌다. 돈을 많이 벌거나 목표를 성취했을 때는 이미 늦는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고 행복을 누려야 한다.

사랑의 반대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게으름이다.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하려면 진정으로 가족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감기에 걸리면 약이나 맛있는 것을 사다주거나 병원에 데려간다. 그것이 배려이고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세상의 그 어떤 약도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장기적인 항생제 복용은 장내 유익균을 파괴시켜 건강에 치명적이다.

아내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 할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았다. 예전에 늘 아픈 아내에게 내색은 안 했지만 짜증이 났다. 아프면 약을 사다주거나 병원에 데려갔다. 그것이 남편의 의무이고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아내의 디스크가 크게 고장이 났다. 척추협착증으로 병원에 갔는데 당장 수술을 권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수핵이 터져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하는 극단적인 상황이었다. 1년간 통원치료를 받아도 별로 진전이 없었다. 병원에 같이 가고 고액의 수술을 시키는 것이 사랑과 배려라고 할 것이다.

아니다. 그때 나는 아내를 위해 허리디스크에 관한 책들을 엄청 읽고 공부했다. 그러다 허리디스크에 관해 현자들의 책을 만났다. 나름 허리디스크에 관해 엄청난 통찰이 생겼다. 그것을 아내에게 적용했다. 매일 1시간씩 아내에게 마사지를 한 것이다. 두 달 만에 약도 끓었다. 다시 병원을 찾으니 의사가 ‘드라마틱하게’ 좋아졌다고 놀라워했다. 수술도 없이 99% 완치되는 기적을 만들었다.

6년 전 다이어트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다이어트, 건강, 행복, 뇌 과학 등에 천 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 또 그것을 실천한 덕분에 내 건강과 행복 지수는 상위 0.1% 안에 든다고 자부한다. 고맙게도 아내도 내 방식을 많이 따라줘서 건강해졌다.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에서 감기 한 번 안 걸리는 건강 체질로 바뀐 것이다.

가족에게 가져다주는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것은 게으름이다. 가족에 대한 관심과 헌신이 행복을 가져다준다. 파산해서 거리에 내몰리는 최악의 경제상황에서 잔소리 한 번 없이 믿고 따라준 아내가 바로 행복 그 자체이다. 한없이 철없던 아들이 회사가 힘들다는 것을 직감하고 알바를 하며 부모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 행복이다. 말 그대로 가난한 날의 행복이다.

Q. 향후 계획이나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A. 홍익인간이다. 나의 삶은 홍익의 정신이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남을 이롭게 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위기에 빠진 기업 혹은 개인을 도와 수렁에서 꺼내주고 재기의 발판을 만들어주면 그게 보람된 일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틀렸다. 남을 위한 삶, 고객을 위한 일이 우선돼야 한다. 이익만 추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물론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언젠가는 테레사 수녀, 슈바이처 박사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매일 남을 위해 작은 것부터 실천하고 있다.

물론 굴곡도 있다. 정말 훌륭한 고객이 있어 거의 무료에 가까운 액수를 제시한 적이 있었는데 성사되지 않았다. 너무 싼 가격에 그 훌륭한 고객이 우리의 실력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그때 완전 무료로 하거나 정상적인 가격에 정말 신심을 다해 도와주는 것이 좋았다는 후회가 들었다. 아직 제 그릇이 작기 때문이다. 더욱 분발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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