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외신 “재벌 중심 한국 재계에 경종을 가하는 사건”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사진=뉴시스>

[월요신문=고병훈 기자] 지난 27일 열린 대한항공 제57회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이 총 참석 주주 가운데 35.9%의 반대로 부결됐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평가와 함께 지난해 7월 처음 도입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첫 적용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자율 지침으로, 기관투자자들이 투자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주주와 기업의 이익 추구, 성장, 투명한 경영 등을 이끌어 내는 것이 목적이다.

국내에서는 최대 투자기관인 국민연금이 지난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투자 기업의 주주가치 제고, 대주주의 전횡 저지 등을 위해 주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0년 만에 대한항공 경영에서 물러나는 과정에서도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반대가 큰 역할을 했다. ‘주총 거수기’라는 비판까지 받던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주주권을 발동, 사내이사 연임 반대 의견을 개진해 성공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지분 11.56%를 보유한 2대 주주 국민연금은 장고 끝에 조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조 회장의 경영권 박탈에 대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대한항공 주주총회는 시장참여자와 사회의 인식을 바꾼 이정표”라며 “기업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명료해졌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국민연금의 과도한 경영 개입 우려에 대해 김 위원장은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하며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면, 국민연금은 누가 감시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며 “국민연금 지배구조까지 개선될 때 우리 모두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질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번 대한항공 주주총회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긍정적 면을 잘 보여줬다”며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채택하고 그에 따라서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여 주주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이번에 결정한 것이지, 경영권을 흔들고자 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조 회장의 대한항공 경영권 박탈에 주요 외신들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재벌 중심의 한국 재계에 경종을 가하는 이정표적인 사건이라는 점은 물론,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보도 의미 있는 대목으로 꼽았다.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현지시간) 기사에서 “총수 일가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재벌의 기업지배구조 문화에서 이정표를 세웠다”면서 “재벌 총수 일가는 상대적으로 작은 지분으로 기업 경영에 과도한 경영권을 행사해왔다”고 전했다.

WSJ은 같은 날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국민연금의 반대를 뚫고 그룹 지주사인 SK의 사내이사로 재선임된 사실을 거론하면서 “조양호 회장의 패배는 한국에서는 예외적인 사례로 남을 수 있다”고도 평가했다.

한편, 조 회장은 지난 2014년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과 지난해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사건 등으로 사회적 질타를 받으며, 20년 만에 대한항공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조 회장은 현재 총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도 넘겨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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