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징계 예상 뒤엎고 ‘기관경고’ 조치…경쟁사들도 ‘안도’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사진=뉴시스>

[월요신문=고병훈 기자] 금융감독원이 지난해부터 제재를 미뤄온 한국투자증권 발행어음 자금 부당대출 건 등에 대해 ‘기관경고’라는 경징계를 내리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3일 제재심의위원회(이하 제재심)를 열고 한국투자증권 발행어음 부당대출건에 대해 ‘기관경고’ 제재를 의결했다. 당초 검토했던 일부 영업정지 등 중징계 조치안을 경징계 수위로 낮춘 것이다.

이번 제재가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서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고 발행어음 사업을 하는 증권사에 대한 첫 제재 사례인 점을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은 이날 제재심에서 지난해 실시한 한국투자증권에 대한 종합검사 결과 조치안을 심의하고 이같이 결정했다. 당시 종합검사에서는 발행어음 부당대출 건을 비롯해 대주주 계열사 신용공여 위반 등 총 8건이 적발됐다.

금감원은 기관경고와 함께 임직원 6명에 대해서는 주의~감봉 등 제재를 하기로 했다. 또 부당대출에 대한 과태료(5000만원)와 기타 적발 건에 대한 과징금 부과를 금융위원회에 건의하기로 했다.

당초 금감원 검사국은 기관 제재로 ‘영업정지 1개월’을 건의하고 임직원 제재로는 최고 ‘직무정지 1개월’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심의 결과 제재 수위는 낮춰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이 발행어음 사업자에 대한 첫 제재 사례라는 점 등을 고려해 기관 제재를 다소 감경하고 그에 맞춰 임직원 제재도 낮췄다”며 “다만 제재심 위원들은 이번 사안을 자본시장법 위반에 해당하는 것으로 봤다”고 전했다.

당국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이번 사안에 대해 당국이 불법임을 인정하면서도 너무 가벼운 처분이 내려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투증권의 제재 수준이 업계 예상보다 낮게 나오자 이미 발행어음 사업을 하고 있는 NH투자증권과 신규 인가를 준비 중인 KB증권 등 경쟁사들도 내심 안도하는 분위기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한국투자증권 종합검사 당시 발행어음 자금이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흘러 들어간 것을 개인대출로 보고 자본시장법을 어긴 것으로 판단해 제재를 예고했다. 초대형 IB는 발행어음 사업을 통한 개인대출이 금지돼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2017년 8월 발행어음 조달자금 1673억원을 SPC인 ‘키스아이비제16차’에 대출했고 이 SPC는 이 자금으로 LG실트론(현 SK실트론) 지분 19.4%를 인수했다. 그런데 최 회장은 SPC와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맺어 수수료를 지급하는 대신 자기자금 없이 SK실트론 지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이를 두고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이 사실상 최 회장 개인대출에 사용된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한국투자증권이 개인대출이 아닌 SPC에 대한 법인대출이라고 반발하면서 이번 결정은 상당히 늦어졌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두 차례 제재심에서 해당 안건을 심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고 첫 심의 이후 약 4개월 만에 마침내 제재 수위를 결정했다.

금감원은 “제재심의위원회는 금융감독원장의 자문기구로서 심의 결과는 법적 효력이 없으며 추후 조치 대상별로 금감원장 결재 또는 증권선물위원회 및 금융위원회 의결을 통해 제재 내용이 최종 확정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