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국회의장이 패스트트랙 철회를 요구하며 지난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장실을 항의방문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등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월요신문=박현진 기자]한쪽에서는 저지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밀어붙이고 있다. 국회 패스트트랙 얘기다. 패스트트랙이란 국회에서 발의된 안건의 신속처리를 위한 제도다.여야 4당은 당초 합의대로 25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법안들을 패스트트랙을 밀어붙였다. 한국당은 이에 맞서 '회의장 점거 투쟁'이라는 물리적 수단을 동원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관철하려는 여야 4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자유한국당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모양새다. 

◆ 패스트트랙 합의 놓고 ‘추진’ vs ‘저지’ 줄다리기

이번 패스트트랙 처리는 20대 국회 운영의 주도권과 입법전쟁을 둘러싸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간의 힘겨루기 향방을 좌우하는 중대분수령이라는 점에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25일 바른미래당 지도부는 오전 옛 바른정당계 의원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사개특위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오신환 의원의 사보임을 강행했다.

바른미래당 지도부는 오 의원을 채이배 의원으로 교체하는 내용의 사보임 신청서를 팩스로 국회에 제출했다. 문 의장이 전날 오 의원 사보임에 반대하는 한국당 의원들과의 마찰 끝에 병원에 입원한 상태라 '병상 결재'가 이뤄졌다. 패스트트랙의 반대하는 유승민 의원 등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이 전날에 이어 이날 오전 국회 의사과에 모여 인편 접수를 저지했지만 막지 못했다.

앞서 오 의원이 사개특위에서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공언하자 사개특위 의결정족수(11명·재적 위원 18명 중 5분의 3 이상) 부족 사태가 예견되면서 발빠르게 내린 조치인 셈이다. 사개특위의 여야 4당 의원 수는 11명(민주 8명, 바른미래 2명, 평화 1명)이라 한명의 이탈만 있어도 패스트트랙은 물 건너간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패스트트랙 철회를 요구하며 지난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장실을 항의방문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등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뉴시스

오 의원의 사보임 강행에 대해 유승민 의원 등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은 반발했다.

유 의원과 정병국·유승민·이혜훈·오신환·하태경 의원은 문 의장이 있는 여의도 성모병원을 항의 방문차 찾았지만 문 의장의 건강 문제 등으로 면담은 불발됐다.

성모병원 앞에서 기자들과 만난 유승민 전 대표는 "평소 문 의장을 그렇게 안 봤는데 오늘 기본적 민주주의 원리, 국회법을 다 어겨가며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모든 게 문재인 정권 하수인을 하기 위한 민주당 2중대를 하기 위한 것이라면 역사에 부끄러울 것"이라며 "문 의장의 이 행동 자체로 국회의원 전체를 대표하는 의장으로서 권위와 자격을 상실했다"고 목청을 높였다.

정병국 의원도 "이런 광경을 목도해 자괴감(이 든다)"이라며 "문 의장이 평생 민주화 투쟁을 하고 손학규 대표도 평생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다는데 이러기 위한 것인지 헌정 파괴를 위해 의장을 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자리에서 지상욱 의원은 "국회의원 과반 날치기"라며 "우리당에서 13명이 사보임을 반대하고 있다"고 철회를 촉구했다. 그는 "사보임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과반 추인한 것이 뒤집힐 수 있다"며 "결론 날때까지 의장결재를 올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태경 의원도 "오 의원 사보임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신 분이 어제 의총 소집에 서명한 10명 외에도 이동섭, 김삼화, 신용현 의원 등 총 13명"이라며 "우리가 의원총회 패스트트랙 표결에서 12대 11, 한표 차이로 졌지만 사보임 반대 숫자는 그 규모를 넘어섰다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관영 원내대표는 지금이라도 패스트트랙에 찬성한 숫자 이상인 13명이 사보임에 반대했다는 것을 깨닫고 사보임 의사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바른정당계 일부 의원들은 이날 사개특위 저지에 온 힘을 다하겠다는 방침을 내비쳤다.

그러나 일부 의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야 4당은 패스트트랙을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여야 4당은 '패스트트랙 D데이'를 맞아 전열 재정비에 주력했다.

◆“지정 반드시 한다” 여야, 4당 지도부 재정비 주력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5일 예상하는 정개특위, 사개특위 전체회의에 대비해 해당 특위 위원들에게 '국회 비상 대기령'을 내렸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에 사개특위 위원들이 참석한 회의를 열어 사법개혁 법안의 패스트트랙 전략을 가다듬기도 했다.

민주당은 특히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사법개혁 법안의 입법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의 사개특위 소속 의원들은 이날 새벽까지 발의를 앞둔 사법개혁 법안들의 조율 작업을 했다.

바른미래당에선 오 의원 대신 사개특위에 투입되는 채이배 의원과 권은희 의원이 참석했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도 정개특위, 사개특위 회의 개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단 오 의원의 사보임 문제가 해결되면서 패스트트랙 열차를 본궤도에 올리려는 여야 4당의 작업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정개특위와 사개특위는 이날 회의를 열어 해당 법안들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안건을 논의한다. 다만 이날 회의는 한국당이 물리적으로 법안 상정을 막겠다고 나서고 있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특별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 및 당직자들이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추진을 막기 위해 점거 농성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당 결사 항전 피력 “마지막까지 투쟁할 것”

한국당은 전날 밤부터 정개특위, 사개특위 회의가 열릴 것으로 보이는 회의장들을 점거했다.

한국당은 정개특위 회의가 주로 열렸던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445호)과 사개특위 회의장인 245호, 220호 회의실 앞에서 만연의 사태에 준비 중이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도 패스트트랙과 관련 마지막까지 투쟁할 것이라는 의지를 내비쳤다. 나 의원은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국회 수장과 의원이 버젓이 법을 어기면서 날치기 통과를 획책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 원내대표는 철야 농성 중인 국회 로텐더홀에서 비상 의원총회를 열고 "본인이 원치 않는 사보임을 허가해서는 안된다고 국회법 48조에 분명히 나와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나 원내대표는 선거제 개편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려는 데 대해 "독립성을 지켜야 할 국회의장이 청와대와 정권 하수인을 자처하고 있다"며 "저들은 궁극적으로 개헌 독재를 꿈꾸고 있다"고 힐난했다.

한편 한국당은 장내 투쟁에 더해 오는 27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소속 의원 전원과 당원 등이 참석한 대규모 항의 집회를 계획하며 공세 수위를 높여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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