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월요신문=박현진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블라디보스토크 정상회담을 통해 결속을 과시했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이날 단독회담을 시작으로 확대회담과 만찬까지 5시간을 함께했다. 상황을 예의주시한 미국은 '비핵화 공조'에 또 다시 셈법이 복잡하게 됐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푸틴 대통령이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을 거론하며 6자 회담이라는 카드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간 비핵화 협상테이블에 중국에 이어 러시아까지 앉으면서 세계 이목이 집중된다.

◆푸틴 6자회담 제안...10년 만에 재개될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 북러 정상회담을 마친 뒤 6자회담 재가동 필요성을 언급함에 따라 10년 만에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후 블라디보스토크 남쪽 루스키섬 극동연방대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이후 현지 기자들과 만나 "(비핵화 이후) 북한의 체제보장에 대해 논의할 때는 6자회담 체제가 가동돼야 한다"면서 "북한에 있어선 다자안보와 같은 협력체제가 필요할 거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정상 간 담판으로 비핵화 협상 동력을 만들어내온 '톱 다운' 방식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한계점에 다다른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이 작심하고 꺼낸 이번 6자 회담 제안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6자회담은 북한의 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남북한,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6개국이 참여하는 다자회담이다. 6자회담은 2008년 12월 수석대표회의를 끝으로 10년째 열리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푸틴 대통령의 회담 후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푸틴 대통령은 '점진적' 접근론을 거론하며 북한에 힘을 실어줬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 측에 자신의 입장을 알려달라고 우리에게 요청했다"며 향후 '중재자'로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향후 푸틴 대통령은 곧바로 방중,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참석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만날 예정이어서 북·중·러 간 연대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에 이어 러시아까지 비핵화 대화 판에 본격적으로 끼어드는 모양새가 이어지면서 국내는 물론 미국 역시 셈법이 복잡해졌다. 그동안 체제 안전 보장이라는 카드를 통해 대북 압박을 해왔지만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북한을 동조하면서 외교전선에도 차질이 빚어지는 형국이다. 

푸틴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제재완화'에서 '체제안전' 문제로 논의를 전환했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따라서 미국이 대북 압박의 최대 무기로 여겨온 국제 제재 전선에 균열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로선 가장 큰 고민으로 해석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 이사국인 러시아가 만장일치로 통과된 유엔의 제재 결의를 노골적으로 회피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완화론에 힘을 실으며 북한에 대한 지원사격에 본격적으로 나설 경우 미국이 주도해온 '최대 압박' 전략이 흐지부지해 질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가운데)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현지시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에서 수행원들과 함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확대 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정은 “미국 태도에 따라 상황 달라져”

푸틴의 적극적인 공세에 김정은 위원장 역시 목청을 높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태도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말한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비선의적 태도'를 지적하고, 향후 미국의 태도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얼마 전에 진행된 제2차 조미수뇌회담에서 미국이 일방적이며 비선의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최근 조선반도와 지역정세가 교착상태에 빠지고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위험한 지경"이라고 지적하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은 전적으로 미국의 차후 태도에 따라 좌우될 것이며, 모든 상황에 다 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중앙통신은 "회담에서 쌍방은 서로의 이해와 유대를 더 밀접히 해나가며 지역의 평화와 안전보장을 위한 전략적인 협동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며 "최고령도자 동지께서는 푸틴 대통령이 편리한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할 것을 초청하시었으며, 초청은 흔쾌히 수락되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중앙통신은 "쌍방은 호상 관심사로 되고 있는 중요 문제들에 대하여 신뢰적이고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심도 있는 대화를 진행하였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제재 전선이 이완될 경우 미국으로선 가장 큰 대북 지렛대가 약화하는 상황이 초래된 셈이다.

◆美 트럼프 “곧 시진핑 만날 것”

북러 행보에 미국의 반응은 조용하다. 다만 미 국무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 달성을 위한 국제적 공조와 조율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조만간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을 곧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자녀와 직장에 가는 날’ 행사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매우 중요한 회담을 위해 내일 방문한다"면서 "중국에서는 곧 시 주석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발언은 북러 간 밀착을 견제하면서 러시아에는 단속의 메시지를, 북한에는 경고의 메시지를 각각 보낸 차원으로 해석된다.

◆‘비핵화’ 강조했던 文, 북-러 정세에 또다른 고심

상황이 이렇다보니 ‘러시아 변수’로 문재인 대통령의 또다른 고심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핵화 협상의 속도감 있는 전개를 위해 추구하고 있는 남북미 정상 간의 '톱 다운(Top down)' 대화 방식에 러시아가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북러 정상회담에서 과거 6자회담의 재개의 필요성을 공개 언급하면서 자칫 추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늘어지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푸틴이 공개적으로 6자회담 재개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현재 남북미 3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비핵화 협상 틀을 흔들어 러시아가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미 협상 교착이 장기화 될 조짐이 보이자 다자 협상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푸틴 대통령이 표면적으로 북한의 체제보장을 명분으로 6자회담의 필요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면에는 극동지역 개발과 동북아 주도권 싸움에서 미국에 밀리지 않겠다는 다목적 의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톱다운 방식으로 4차 남북 정상회담과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조속히 개최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구상에도 일정부분 차질이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아시아뉴스네트워크(ANN) 이사진 접견 자리에서 "나는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김 위원장을 만날 것이고, 북미 대화 또한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마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6자회담을 강조하게 된 일정 부분 스스로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아주 없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남북미 3자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푸틴이 끼어들 명분을 제공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북러 회담에 앞서 방안한 파트루셰프 서기에게 '중러 공동행동방안'에 대해 분명하게 거절 의사를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의 속셈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파트루셰프 서기에게 "지금 시급한 과제는 북미대화 재개와 비핵화 촉진"이라며 "공동행동계획도 미국과 충분히 협의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러시아 측에서 미국과 많이 논의해달라"며 "우리도 충분히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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