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윤주애 기자] KEB하나은행이 최근 지식재산권(IP) 담보대출 상품을 출시했다. IP담보대출은 중소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재산권을 기술 가치 평가기관의 전문적인 평가를 통해 가치를 평가하고 대출심사가 이뤄진다. 은행들이 손에 잡히지 않는 지식, 특허를 담보로 잡고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부동산 등 유형의 담보대출이 관행적인 금융권에선 ‘혁신’의 상징으로 통한다. 그만큼 부실 위험도 크다.

현 정부는 ‘혁신금융’을 외치며 IP담보대출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시중은행들이 상반기 중으로 IP담보대출 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KB국민은행이 5월, NH농협은행은 6월 중으로 신규 상품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은행들은 적지 않은 부담을 안고 있다. 가뜩이나 가계대출 규제로 수익성이 떨어진 상황에서 아예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취재결과 KB국민은행은 신규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지만, 꼭 5월말로 확정된 적이 없다고 한다. 금융상품을 공산품처럼 출시 예정일을 목표로 찍어내듯이 상품을 만들어낼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 점에서 금융위원회의 조급함이 엿보인다. NH농협은행도 6월 상품 출시를 앞두고 세부사항을 마련하는 중이다.

시중은행에서 IP담보대출 상품이 출시된 것은 KEB하나은행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3월 우리은행, 4월에는 신한은행과 KEB하나은행이 신규 상품을 출시했다. 그러나 IP담보대출 실적은 어디에서도 공개하지 않았다. 실적을 공개하기 애매하거나 수치가 미미해서 공개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 대부분 신규 상품을 출시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라는 이유를 달았다. 기업은행과 산업은행은 몇 년 전부터 IP담보대출 상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기자가 실적자료를 재차 요구해도 수치를 얻을 수 없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보통 IP의 평가가치가 10억원을 넘는 경우를 못 봤다”며 IP담보대출 규모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IP담보대출을 판매해왔지만 내부에서 수치가 나간 적이 없다.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은행권의 IP담보대출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IP담보대출 은행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은행의 혁신성 평가에 IP담보대출 실적이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IP담보대출을 밀어붙이기 식으로 대중화시키는건 어렵다는 점이다.

IP담보대출은 기술금융에 속한다. 기술금융은 한 마디로 신용대출이다. 은행연합회가 매달 공시하는 기술금융 실적을 살펴봤더니 은행권의 피로감이 확연히 드러났다. 기술신용대출 잔액(누적 기준)은 지난 3월말 총 174조7869억원을 기록했다. 

그런데 올 1분기 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성장세가 둔화됐다. 대출잔액이 지난해 9% 증가한 반면, 올해는 6.7%로 낮아졌다. 올해 3월 한 달간 대출잔액이 2.7% 증가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3.1%)에 비해 낮은 수치이다. 은행들은 가뜩이나 암울한 영업환경 속에서 적지 않은 충당금을 쌓으며 보수적으로 건전성 관리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역대 정부에서도 말만 다를 뿐 금융을 혁신하자는데 궤를 같이 했다. 그러나 정부 주도로 창조경제 1호 기업에 대출해줬다가 대규모 부실로 뒷목을 잡은 은행이 한 둘이 아니었다. 혁신금융의 산물인 인터넷전문은행 1호 케이뱅크는 자금줄이 막혀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부는 민관합동으로 혁신금융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은행권이 3년간 기술금융과 동산 분야 등에 100조원, 금융투자업권에서 5년 동안 기업공개(IPO), 초대형 투자은행(IB) 등을 통해 125조원을 푼다. 5년간 민간 금융권이 총 225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한다. 이 돈은 국민 혈세에서 나온 것이다. 단 1원도 허투루 사용해선 안된다. 정부와 업계는 ‘확인 또 확인’의 자세로 혁신금융 속도를 조절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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