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고은별 기자

[월요신문 | 고은별 기자]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덕에 대해 배우려 하지 않는다.’ 유변(柳玭)이라는 당나라 명문의 자손이 남긴 가훈 중 ‘패가망신’ 하는 다섯 가지 원인 가운데 일부 내용이다. 갑질 사태로 여태껏 어수선한 한진가(家)를 두고 자식 교육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대두되고 있다.

한진가 갑질 사태는 정확히 2014년 12월 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뉴욕 JFK 공항에서 인천으로 가려던 항공기에 탑승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가던 중 마카다미아 제공 서비스에 불만을 품고 사무장과 언쟁을 벌인 끝에 비행기를 탑승 게이트로 돌렸다. 일명 ‘땅콩회항’ 사건이다. 사무장에 폭언·폭행을 가한 조 전 부사장은 2015년 2월 법정 구속돼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경영 일선에서도 물러나 약 3년 동안 자숙의 시간을 가졌다.

한동안 조용하던 한진그룹은 지난해 4월 또 한 번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작고한 조양호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발단이 됐다. 이번엔 ‘물컵 갑질’이다. 조 전 전무는 같은 해 3월 회의 자리에서 광고대행사 직원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자 물컵을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적 공분을 불러온 이 사건은 수사를 맡은 검찰이 무혐의로 처분하며 일단락됐다.

그동안 재벌 3세의 갑질 문제는 곳곳에서 터져 나왔지만 형제, 그리고 배우자까지 갑질로 도마 위에 오른 것은 한진그룹이 유일하다.

형제 중 두 자매의 사건만 언론을 통해 크게 이슈됐을 뿐, 최근 한진그룹 회장에 오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도 갑질 문제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과거 2000년 교통단속을 하고 있던 경찰관을 치고 달아나 시민들에게 붙잡혔으며 2005년 70대 노인에 폭언·폭행을 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바 있다. 2012년에는 인하대 운영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와 말다툼을 하던 중 욕설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진가의 갑질 문제는 비단 폭언·폭행을 넘어 밀수·탈세·배임 등 혐의로까지 번졌다.

고(故) 조 회장은 2013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대한항공 납품업체들로부터 항공기 장비·기내면세품을 사들이며 트리온 무역 등 업체를 끼워 넣어 196억원 상당의 중개수수료를 챙긴 혐의(특경법상 배임)를 받았다. 또 2014년 8월 세 자녀가 보유한 정석기업 주식 7만1880주를 정석기업이 176억원에 사들이도록 해 정석기업에 약 41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도 있다.

그의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은 운전기사·가정부 등에게 일상적으로 욕설과 폭언을 한 혐의로 최근 재판에 넘겨졌다. 이 전 이사장은 장녀인 조 전 부사장과 함께 외국인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 그리고 대한항공 항공기 등을 통한 명품 밀수입 혐의도 받는다.

이처럼 각종 갑질 및 위법 혐의로 한진가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직원들은 오너가의 ‘퇴진’을 외치며 먼저 등을 돌렸고 고 조 회장은 올해 대한항공 정기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조 전 부사장은 가정생활까지 세간에 알려지며 이혼 소송 중이다. 선친이 남긴 유언에도 한진그룹 삼남매는 총수 지정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등 갈등설에도 휘말렸다.

그사이 대한항공은 세계 72개 항공사 순위에서 지난해보다 3계단 하락한 69위를 기록, 세계에서 최악의 항공사 4위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일류 항공사로서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계속된 갑질 문제로 대한항공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입힌 한진가가 과연 이들 손으로 그룹 및 대한항공 도약을 이끌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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