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하이트·롯데, ”캔맥주 경쟁력 회복 기대”
막걸리, 영향 ‘미미’…소주, ‘종가세’ 유지

주류 과세 체계가 50년 만에 현행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뀐다. 다만 ‘서민의 술’ 소주는 기존 종가세를 유지할 방침이다. /사진=뉴시스.

[월요신문=이명진 기자] 수입 맥주 확산의 주인공 ‘4캔 만원’ 마케팅에 국산 맥주 합류가 전망된다. 정부가 주류 과세 체계를 50년 만에 현행 종가세(제조원가 기준 과세)에서 종량세(용량·알코올 함량 기준 과세)로 바꾸면서 길이 열린 것이다.

정부는 내년 1월부터 국산 캔맥주에 붙는 세금을 줄이고 생맥주·수입 맥주의 세부담을 확대하기로 했다. 그간 지적 받아 온 국산 캔맥주와 수입 맥주의 역차별을 해소한다는 전략이다. ‘서민의 술’ 소주는 기존 종가세를 유지한다.

7일 기획재정부·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일 당정협의를 열어 주류 과세체계 개편방안을 확정했다. 이번 개편안은 맥주·막걸리의 경우 종량세를 적용, 소주는 종가세를 유지한다는 게 골자다. 종량세 전환으로 맥주는 내년부터 L당 830.3원의 주세가 붙는다.

이렇게 하면 주세에 교육세·부가가치세 등 세 부담이 국산 캔맥주는 23.6% 가량 줄어든다. 현재 국내 주요 3사인 OB·하이트·롯데의 주세가 1L당 1121원꼴인 점을 감안하면 26%가량 낮아지는 셈이다. 반면 국산 병·페트병맥주는 각각 1.8%, 3.1% 늘어난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의 개편안을 9월 초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주세법 개편으로 그간 지적됐던 국산 맥주와 수입 맥주의 역차별 문제는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종가세 방식에선 수입 맥주의 수입신고가를 과세표준으로 삼기 때문에 판매관리비, 각종 이윤을 합친 출고가를 기준으로 삼던 국산 맥주보다 세금을 오히려 덜 내왔다. 때문에 결국 종량세 전환은 수입 맥주와의 경쟁에서 차츰 밀리는 국산 맥주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키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맥주 업계는 이번 종량세로의 전환을 대체적으로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주세법 개정으로 국산 맥주의 경쟁력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정부의 취지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당초 출고가가 캔·병맥주보다 낮아 종가세 체계에서 더 유리하게 적용됐던 생맥주다. 당장 세부담이 늘어나면 소비자가격도 오를 수 있기 때문. 이런 이유로 생맥주는 내년부터 평균적으로 L당 445원 오르지만, 세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는 걸 막기 위해 2년간 세율을 20% 경감한다. 그럼에도 생맥주에 붙는 세금은 25.4% 인상되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국산 생맥주·병맥주의 세금이 올라도 캔맥주의 세금 인하로 당장 맥주 가격 전반의 인상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종량세 도입과 더불어 가장 주목받았던 수입 맥주는 전체적으로 세 부담이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브랜드별로 세 부담 변화에 차이가 발생해 수입 캔맥주 가격은 우려와는 달리 현수준에서 크게 움직이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이네켄이나 스텔라 등 저가 맥주는 세 부담이 오르지만, 기네스 등의 고가 맥주의 경우 오히려 전보다 가격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

현재 수입 맥주의 40% 가량은 국내 주류 업체들이 수입해 팔고 있다. 맥주업계 시장 경쟁이 치열한 데다 수입 맥주를 들여오는 국내 업체들이 술값을 올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 ‘4캔에 만원’ 마케팅도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종량세 전환과 관련해 큰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업체로는 수제맥주 업체를 꼽을 수 있다. 수제맥주 업계는 그간 현행 ‘종가세’에 따라 수입·일반 맥주에 밀려 고군분투 해왔다. 김병규 기재부 세제실장은 지난 4일 브리핑을 통해 “L당 평균적으로 78원 가량의 세부담 인하 요인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수제맥주 업계의 경영여건 개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개편안은 맥주 외에 막걸리에도 종량세를 도입키로 했다. 막걸리의 개정 세율은 지난 2017년과 지난해 세율의 평균값인 L당 41.7원을 적용한다. 막걸리의 경우 다른 주종 대비 종량세 도입에 따른 세부담 변화가 낮은 수준이라 업계에서도 특별히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진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막걸리 업계 관계자는 “탁주는 주세가 5%정도 밖에 안되기에 종량세 전환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하지만 종량세로의 전환을 계기로, 원료나 프리미엄 제품들이 다양해지고,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이번 개정안에는 그간 업계가 요구해 왔던 향이 들어가 있는 막걸리의 개선 요청 등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이 빠져 있어 막걸리를 둘러싼 제도적인 정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의 이번 종량세 개편은 주류 양에 비해 알코올 도수가 높아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 것으로 우려됐던 소주를 포함한 증류주, 약주·청주, 과실주 등의 다른 주종은 빠진 것으로 나타나 반쪽짜리 개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이는 조세 형평성·소비자 가격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다만 향후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전환을 검토할 예정인 것으로 드러나 조세 개편 가능성은 열어둔 상태다.

하지만 업계는 맥주·막걸리 외 다른 주종은 사실상 종량세로의 전환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소주의 경우 도수에 비해 가격이 싼 소주의 종량세를 도입하면 세금이 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실질적으로 세율이 바뀌면 모순이 생길 수 있어 업계에서도 반대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바뀌긴 해야겠지만 쉽게 묘안을 찾기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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