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와 깊이, 우리시대 대표 문인으로 손꼽혀온 작가 박완서가 지난 22일, 지병이던 담낭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70년 불혹의 나이에 장편 소설 <나목>으로 데뷔한 이후, 20여편의 장편과 헤아릴 수 없는 단편, 산문을 발표해온 작가는 등단 41년이던 올해 초, 향년 80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학창시절 문인을 꿈꾸던 문학소녀에서, 늦깎이 신인작가로 또,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으로 성장을 거듭해온 고 박완서는 젊은 시절 비극적 체험과 아울러, 전업주부로 느낀 일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특히, 여타 여류작가들과는 달리, 깊이 있는 성찰에 일상의 재미를 곁들이면서 대중 작가로도 명성을 쌓아왔다. 작가의 일생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돌아본다.

 

 

 

“소설이 단명해지다 못해 일회적인 소모품처럼 대접받는 시대건만 소설쓰기는 손톱만치도 쉬워지지 않다. 억울하면 안 쓰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억울하다” 다채널, 다미디어 시대에 밀린 문학의 현주소에 대해 소설가 박완서는 이런 말을 남겼다.

 

영결식 후에도 추모물결 넘실

 

지난해로 등단 40주년을 맞았던 소설가 박완서는 지난 22일, 이 같은 말을 남기고 그간의 담낭암 투병에도 불구, 별세했다. 향년 80세. 고 박완서는 지난해 가을 암 진단을 받고 수술 후 치료를 받아 왔으나 최근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한국 문단에 적지 않은 족적을 남기고 운명을 달리한 작가의 별세에 문단은 물론이고, 그를 아끼던 많은 이들은 슬픔에 빠졌다. 장례가 치러진 후에도, 인터넷을 통한 추모의 물결은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그의 글과 작품을 아꼈다는 뜻이다.

 

불혹의 나이에 늦깎이로 등단한 후, 줄곧 한국의 대표적인 여류 작가로 군림해온 고 박완서는 70년 여성 잡지인 <여성동아>에 장편 소설 <나목(裸木)>으로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그 후 꾸준한 창작활동을 통해, 다수의 소설과 산문 등 작품을 출간하면서 이른바 ‘국민작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

 

그의 작품에 대해 주로 평론가들은 ‘전쟁의 비극, 중산층의 삶, 여성문제’를 다루었다는 평가를 내리며 자신만의 문체와 시각으로 작품세계를 완성해온 작가라고 평한다. 실제 고 박완서는 생전 특유의 작품 세계를 통해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문학상 등 한국 문단의 주요 작가상을 휩쓴 바 있다.

 

지금은 분단으로 쉽게 갈 수 없는 황해도 개풍군에서 태어난 작가는 어린 시절이던 세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고, 7살이 되던 해 서울로 이주했다. 그러나 늦은 나이에 등단이라는 말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의 문학적 소양은 간단치 않았는데 이 같은 재능은 44년 그가 숙명여고에 입학하면서 시작된 것.

 

여기서 작가는 담임 교사면서 소설가였던 박노갑에게 커다란 영향을 받아 문학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문학과에 입학한 작가의 꿈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휘말리면서 꽃을 피우지 못하게 되는데 바로 50년 일어난 6.25가 그것. 전쟁으로 가족 중 숙부와 오빠를 잃는 등 비극이 겹치면서 결국 학업마저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학업을 중도에 중단한 작가는 53년 남편 호영진을 만나 결혼하고 여기에서 1남 4녀의 자녀가 태어나게 된다.

 

꿈 접었던 문학소녀, 늦깎이로 데뷔

 

하지만, 그의 문학적 소양과 열정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타오르면서 급기야 이미 5남매의 전업주부면서 불혹의 나이인 70년 <여성동아> 장편 소설 공모전에 응모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당시 작품인 소설 <나목>은 작가가 미군부대에 근무할 때 만난 화가 박수근을 다룬 이야기로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게 된다.

 

이때부터 주부 박완서는 고은, 이문열 등과 함께 현대 문학사의 획을 긋는 대표 작가로 성장하게 되는데 데뷔에서부터, 작고에 이르는 동안 여러 시각을 통한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이게 된다.

 

그의 창작 초기는 비판과 풍자가 어우러진, 서민적 특징이 두드러지는데, 특히 작가는 작품에서 중산층의 생활양식에 대한 비판과 풍자에 주력했는데 77년 작, <도시의 흉년>에서 시작해 역시 같은 해 발표한 <휘청거리는 오후>가 대표적, 이어 이듬해인 78년 작인 <목마른 계절> 등의 작품은 모두 중산층 가정을 무대로 가족의 내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작품에서 작가는 새로운 사회, 윤리적 판단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물론, 가족 구조의 변화를 역사적인 사회변동의 한 양상으로 파악하는 잣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울러, 일상적인 현실의 삶을 실재성에 의거 따라 정확히 그려내 한국사회의 내면적 변화에 무엇이 존재하는지를 심도 있게 고찰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특히 박완서 소설의 특징으로는 일상적 삶 속에 중년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돋보인다는 것으로 현실 감각이 적지 않게 녹아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젊은 시절 겪어야 했던, 한국전쟁의 비극적 체험과 참상이 어울려 보다 심화된 내면의식을 형상화하는데도 탁월하다는 것. 그의 첫 장편소설인 <나목>와 83년 발표된 <그 해 겨울을 따뜻했네>에서도 끔찍하리 만큼 생생한 전쟁의 참상이 잘 그려지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소설이 온통, 비극과 참상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쟁 등의 비극적 상황에도 불구, 능청스러운 익살이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나 버린 삶에 대한 애착과 핏줄에 대한 절절한 애정, 일상의 삶에 대한 안정된 감각이 살아있는 듯, 꿈틀대는 것도 그의 작품의 특징이다.

 

일상의 성찰 돋보인 문학세계

 

작품들의 경향에서도 일부 여류 작가들과는 적지 않은 차별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박완서의 작품은 그의 삶의 과정에 드러난 고난이 작품에도 투영되면서 깊이를 더한다는 점이다. 이는 분단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집요하게 파헤치면서도, 여타 작품을 통해서는 소시민적 삶과 물질중심주의와 여성억압문제를 그린 내용이 많았다는데 기인한다.

 

이중 그의 후기작으로 평가되는 91년 작,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와 92년 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은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이에 대해 평론계에서는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일그러진 개개인들의 삶의 초상과 그 안의 물신적 삶의 행태, 무기력한 소시민의 일상, 억눌린 여성 등 그의 문학세계는 실로 놀랄 만큼 다양하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작가의 삶과 문학관은 고스란히 문단에 조류로 자리잡히게 된 것도 박완서의 문학세계를 높이는 토대다. 작가에 대해 평단은 7,80년대 소위 ‘민족문학과 모더니즘’이라는 두갈래의 조류에서 등한시했던 ‘중산층’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한 동료 작가도 “인간의 숨겨진 위선과 허위를 숨김없이 까발리고, 위로 받게 하던 작가”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편, 이는 작가 자신의 문학적 욕구와도 맥을 같이는 하는 것으로 생전 작가가 추구한 ‘뼈대있는 소설’이라는 그만의 작가주의를 명확하게 구현한 창작 과정으로 평가된다.

 

 

고 박완서 작품 연보

 

70년 <나목>

77년 <휘청거리는 오후>

78년 <목마른 계절>

79년 <욕망의 응달>

80년 <살아 있는 날의 시작>

82년 <오만과 몽상>

83년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85년 <서 있는 여자>

89년 <도시의 흉년>

89년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90년 <미망>

92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92년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2008년 <친절한 복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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