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월요신문=성유화 기자]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가 서명한 국회 정상화 합의문이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바로 휴지조각이 되면서 나경원 원내대표의 리더십에 흠집을 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나경원 자유한국당,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24일 오후 국회 정상화 합의문에 서명했다. 합의문에는 7월 11일과 17일, 18일 추가경정예산안(추경)과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를 연다는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오는 28일부터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열어 논의를 시작하며 교섭단체 대표연설과 대정부 질문 일정도 합의했다.

이 원내대표는 합의문 발표에 앞서 "패스트트랙 추진 과정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 국회가 파행 사태를 반복한 것에 대해서 아주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그간 한국당이 요구했던 패스트트랙 사과와 관련해 포괄적 유감을 표명한 것이다.

나 원내대표는 "오늘 패스트트랙 유감 표명과 합의 처리에 대한 말씀을 해주신 이 원내대표의 결단에 감사드리고 이제 국회로 돌아가서 합의정신에 따라 처리하도록 노력하겠다"며 한국당의 국회 복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한국당은 합의문 서명 직후 진행된 의총에서 나 원내대표가 서명한 합의문에 대한 추인을 거부했다. 국회 정상화 합의안이 2시간 만에 퇴짜를 맞은 것이다. 나 원내대표는 의총 직후 기자들에게 “의원들로부터 조금 더 분명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의사표시가 있었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북한 주민들의 목선 입항과 관련한 국정조사는 계속 요구하고 있다. 다만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김현준 국세청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와 상임위원회는 선별적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한국당은 현재 민주당과의 재협상을 예고한 상태다. 나 원내대표는 25일 국회에서 ‘사이버안보 이대로 좋은가’란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협상을 계속 진행하느냐’고 묻는 질의에 이 같이 답했다.

특히 이번 한국당의 번복이 나 원내대표에게는 치명상이 될 수도 있다. 일각에서 나 원내대표의 리더십과 원내대표 자질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원내대표는 ‘당내에서 (협상 실패로 인해) 나 원내대표의 리더십을 문제 삼는 의원들이 있다’는 의견에 “당에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이라며 재신임 문제에 대해서도 들은 바 없다고 일축했다. 이어 황교안 대표와의 합의문 최종 조율이 있었냐는 질문에는 “다 논의한다”고 답했다.

여야 원내대표 간 서명까지 주고받은 합의안이 의원총회에서 부결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로 꼽힌다. 이에 따라 나 원내대표의 책임론이 더욱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비슷한 선례로 정우택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박영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있다. 정 전 원내대표는 지난 2017년말 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예산 관련 합의안에 대한 의총 추인을 요청했지만 부결된 바 있다. 2014년 5월 취임한 박영선 원내대표는 당시 세월호 참사 후속 대책 협상 과정에서 당내 반발을 피할 수 없었다. 이후 이들은 정치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됐다.

지난 2011년 민주당 김진표 당시 원내대표는 한미 FTA 비준안 협상안으로 의총에 부쳤지만 부결됐다. 마찬가지로 2009년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미디어법 합의안을 의총에 부쳤으나 부결됐다. 이들 역시 정치적 타격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2004년 연말에는 천정배 열린우리당 당시 원내대표가 '4대 개혁법안' 처리를 놓고 한나라당과 협상안을 의총에 부쳤으나 부결됐다. 그는 결국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야했다.

현재 자유한국당은 황교안 대표와 투톱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황 대표 역시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론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황 대표는 패스트트랙 이후 ‘민생투쟁 대장정’ ‘희망·공감-국민 속으로’ 등 장외투쟁 시리즈에만 몰두하며 당을 강경 일변도로 끌고 가, 나 원내대표의 협상 여지를 좁혔다는 ‘가이드라인’론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위신에 타격을 입은 한국당 지도부뿐만 아니라 국회 파행의 책임까지 한국당 쪽으로 쏠릴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측은 한국당의 번복에 강경하게 나가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25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어제 자유한국당은 공존의 길을 외면하고 끝내 오만과 독선의 길, 패망의 길을 선택했다"고 힐난했다.

그는 "국회정상화를 바라는 대다수 국민의 여망을 정면으로 배반한 것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라며 "타협과 절충을 외면하고 의회주의를 송두리째 부정했다. 이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고 의회주의에 대한 폭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합의를 부정하는 어떤 정략과 술수에도 타협할 수 없음을 분명히 말한다"며 "시간이 지나면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새로운 협상이 가능할거란 착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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