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왕세자 이어 손정의 회장 재계 회동 주도
경영현황 점검·미래 먹거리 모색…위기 타개 의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4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국가구박물관으로 국내 기업 총수들과의 만찬 회동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월요신문=고은별 기자] 국가 차원의 위기 상황에서 리더십이 더욱 빛나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국내 산업 전반 위기감이 확대되는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안팎 살림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다.

5일 재계에 따르면 어제(4일) 저녁 이 부회장은 서울 성북구에 있는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 그리고 국내 재계 인사들과 만찬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는 이 부회장을 비롯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글로벌투자책임자(GIO),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가 참석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26일 승지원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국내 5대 기업 총수 회동에 이어 이번에도 기업 총수, 대표들을 직접 초청하는 방식으로 회동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과 손 회장은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매년 7월 열리는 글로벌 비공개 최고경영자 모임인 ‘선밸리 콘퍼런스’에서 정기적으로 만난다. 특히 갤럭시의 ‘두뇌’ 역할을 하는 모바일 반도체(AP) 엑시노스는 영국 반도체 회사 ARM의 설계도를 쓰고 있는데, 2016년 소프트뱅크가 ARM을 인수하며 두 사람의 사이가 더욱 가까워진 것으로 분석된다. 두 사람의 공식적인 만남은 2016년 9월 이후 약 3년 만이다.

이 부회장은 이번 회동에서 재계를 대표하는 ‘리더’로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손 회장을 만난 이 부회장 등은 AI(인공지능) 등 차세대 IT서비스에 대한 비즈니스 방안을 논의하는 한편,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조언도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회장과 손 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 모처에서 만나 회동 장소까지 동승하며 따로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에서 재일교포 3세인 손 회장과 이 부회장 등 국내 기업인들의 만남은 큰 화제를 낳았다.

이 부회장은 올해 들어 글로벌 인사들과 만남을 지속 추진, 경영 보폭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2월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제 면담 및 방한을 이끌어내 국내 재계 총수들과의 모임을 주선했다. 같은 달 인도 모디 총리와의 청와대 국빈오찬에는 정 수석부회장과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지난 5월에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도 있었다.

5G 개화와 함께 지난해 하반기부터 변곡점을 맞은 반도체 산업 불황에 대비, 1월 수원사업장 5G 장비 생산라인 가동식에 참석하며 직접 사업을 챙겼다. IM부문을 시작으로 DS부문 간담회, 이낙연 국무총리 등 정부·국회와의 간담회, 그리고 2월엔 중국 시안의 반도체 공장 사업 점검에 나서는 등 상반기부터 활발한 경영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같은 이 부회장의 리더십 및 삼성전자의 역할은 한·일 관계를 비롯해 글로벌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적 의미를 갖는다. 삼성전자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1위 기업으로 SK하이닉스와 함께 전 세계 D램 시장의 70%, 낸드플래시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 일본의 수출 규제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량 감소, 재고 소진 등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이며,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에 차질까지 빚어질 경우 미국의 대표적 시스템반도체 업체인 퀄컴, 엔비디아 등도 피해를 볼 수 있다.

또 한국에서 수입한 반도체·디스플레이를 이용해 TV와 노트북을 만들고 있는 일본 업체로는 소니, 샤프, 닌텐도, 파나소닉, 도시바 등이 있어 일본 내 기업 피해도 우려되고 있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 5월 일본 최대 이동통신사인 NTT 도코모와 KDDI 본사를 방문, 5G 사업 협력 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등 일본 5G 시장에 공들이고 있기도 하다. 반도체 산업 피해를 막고 일본 5G 시장을 공략코자 이번 수출 규제 대응에 적극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의 수출 규제와 관련해 이 부회장은 조만간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과도 면담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WTO(세계무역기구) 제소와 함께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상응 조치를 적극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반도체·디스플레이를 비롯해 세트 등을 모두 만드는 글로벌 IT기업으로서 거래선과의 상생을 위한 중요 위치에 있다”며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로 기업이 위축된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미래 먹거리 등 경영환경을 직접 챙기며 내·외부 위기 타개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기업과 국내 기업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조성해 자국 기업의 유리한 사업환경을 만드는 데도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1일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요한 화학제품의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포트레지스트·불화수소·플루오린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이 어제(4일)부터 개별 허가 품목으로 전환, 앞으로 이들 품목이 국내 들어오기까지 최장 90일이 걸릴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모두 대일 의존도가 높은 제품으로 플루오린폴리이미드의 경우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제품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스마트폰까지도 원활히 생산하는 데 제동이 걸렸다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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