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통한 대규모 ‘허수성 주문’…“시장감시 규정 위반”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국거래소 전경. / 사진=뉴시스

[월요신문=고병훈 기자] 한국거래소가 글로벌 투자은행(IB) 메릴린치증권에 대해 국내 증권시장에서 알고리즘 거래를 통한 ‘초단타 매매’로 대규모 허수성 주문을 처리한 혐의로 회원제재금 1억7500만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거래소 감리 결과 메릴린치증권은 지난 2017년 10월부터 작년 5월 사이에 미국 시타델증권으로부터 430개 종목에 대해 6220회(900여만주, 847억원어치)의 허수성 주문을 수탁해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소는 메릴린치증권이 해당 기간 동안 약 80조원의 거래를 수탁했고, 위탁자인 시타델 증권은 약 2200억원대의 매매차익을 시현한 것으로 추정했다.

시장감시규정 제4조는 ‘거래성립 가능성이 희박한 호가를 대량 제출하거나, 직전가격 또는 최우선 가격 등으로 호가를 제출한 뒤 반복적으로 정정·취소해 시세 등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거나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허수성 주문)를 금지하고 있다.

시타델증권은 메릴린치를 통해 미리 정해진 컴퓨터 알고리즘에 따라 단기간에 주문을 내놓는 알고리즘 거래 방식으로 대규모 허수성 주문을 쏟아낸 것으로 조사됐다.

거래소 측은 “허수성 주문 수탁을 금지하는 거래소 시장감시 규정 위반”이라며 “고가로 허수성 매수 주문을 내놓아 다른 투자자의 추격 매수세를 끌어들인 뒤 시세가 오르면 보유물량을 매도해 시세차익을 얻고 이미 제출한 허수성 호가를 취소하는 방식을 반복했다”고 설명했다.

메릴린치는 2017년 10월부터 자체 모니터링 시스템에서 시타델증권의 허수성 주문을 인지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허수성 주문이 늘고 있다는 사실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거래소는 2017년 11월 시타델증권 계좌를 허수성 호가에 따른 감리 대상 예상계좌로 선정해 메릴린치에 통보했지만, 메릴린치는 허수성 주문을 막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 없이 이를 방치해 거래소 회원사로서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지적됐다.

거래소는 허수성 주문을 메릴린치에 위탁한 시타델증권에 대해서도 일부 거래 종목에서 자본시장법 위반소지(시세조종 혐의 등)가 있는 것으로 보고 심리 결과를 지난달 18일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에 통보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이번 제재가 직접시장접근(DMA) 방식을 이용한 알고리즘 매매주문 수탁행위에 대해 회원사들의 주의를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앞으로도 시장 건전성을 저해하는 행위에 대해 지속적으로 시장감시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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