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달 16일 오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사장단 회의에 참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월요신문=이명진 기자]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한 달을 넘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당초 재계에서 직접적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으로 지목받아온 만큼 불매여론의 직격탄을 맞아 이미 롯데의 브랜드별 매출 감소폭은 늘어나고 있으며, 여기에 ‘일본 기업’이라는 꼬리표까지 붙으며 정체성 논란마저 재점화되고 있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신 회장은 지난 2일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일본 도쿄로 출국했다. 지난달에 이어 신 회장의 도쿄행은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다는 결정을 내린 직후 이뤄진 것으로, 재계에선 이번 신 회장의 출국 시점을 두고 여러 추측을 쏟아내고 있다. 앞서 신 회장은 지난달 5일 일본의 1차 수출규제가 내려진 직후에도 열흘 가량 일본 금융그룹 관계자들을 두루 만나고 온 바 있다. 때문에 이번 신 회장의 도쿄행 역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해법을 모색하고자 택한 행보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의 1차 경제보복 조치로 인한 반일 감정이 치솟으며, 롯데그룹의 유통사업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실제 일본과의 합작사로 알려진 유니클로·아사히맥주 등의 매출은 이미 반토막난 상태다. 특히 유니클로의 경우 최근 일부 점포 철수까지 진행되는 등 유통업계 내에선 ‘제 2의 유니클로’로 찍히지 않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더군다나 수입맥주 점유율 1위를 자랑하던 아사히 매출은 6위로 추락하는 등 유통업계 내 국내 입지가 점차 좁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최근엔 ‘반롯데’ 정서까지 확산돼 일본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그룹 계열사들의 매출 감소까지 예상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 한국·일본롯데를 모두 경영하고 있는 신 회장으로서는 양국간의 마찰로 인한 위기감이 누구보다 클 수 밖에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게다가 신 회장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비롯해 일본 정계 등과 친분이 깊은 것으로도 알려져 재계에선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분류된다.

때문에 민감한 시기, 두 번째로 일본을 찾은 그가 이번엔 좀 더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간 신 회장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 등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며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다. 앞서 지난달 16일 열린 사장단 회의에서도 당초 예상과는 달리 한일 갈등에 관한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으며, ‘반일 국민 정서’에 공감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보다 정교해진 불매 여론에 대한 여파로 그의 행보 또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 회장은 지난달 28일 김포 롯데백화점·롯데몰을 시찰하는 등 현장 방문으로 분위기 파악에 나섰다. 평소 신 회장의 경우 비공식적으로 영업장을 둘러보는 일이 잦다는 게 롯데지주 측 설명이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번 그의 현장점검은 불매운동에 따른 분위기 파악을 위한 행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실제 신 회장은 김포 유통몰을 점검한 후 이를 관리하는 유통 사업부문(BU)에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신 회장이 한일 간 갈등에 대한 해법 마련에 적극 가세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는 상황.

한 업계 관계자는 “시간이 갈수록 한일관계가 악화되며 불매운동이 주는 타격이 큰 만큼 시급한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는다면 신 회장의 경영 행보에도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며 “이런 점에서 이번 그의 행보는 일본 사정을 파악하며 한국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차원에서 적극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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