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에 올라온 한국공항공사 ‘2019년 KAC 신입사원 리텐션 과정’ 교재 일부/사진=블라인드

[월요신문=고은별 기자] 한국공항공사가 신입사원 교육과정에서 직장 내 회식 문화와 관련, 악습을 가르쳐 논란이 되고 있다.

공항공사 신입사원은 입사 1년이 되면 3일간 연수원에 모여 리텐션(retention) 교육을 받는다. 내부 직원을 통해 공개된 ‘2019년 KAC 신입사원 리텐션 과정’ 교재에는 ‘윗사람이 권하는 술은 꼭 받아서 즉시 마시는 것이 예의’라는 등 시대착오적 교육 내용이 담겨 후폭풍이 예상된다.

최근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에는 ‘이게 신입사원 교육으로 적절하다고 생각됩니까?’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공항공사 직원으로 추정되는 글 작성자는 “이번 (리텐션) 교육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돼 많은 분들의 의견을 듣고자 한다”고 말했다.

글쓴이가 올린 올해 공항공사 신입사원 리텐션 과정 교재에는 회식과 관련한 ‘비즈니스 매너’가 소개된다.

회식 자리에서 지켜야 할 사항으로는 ‘경영방침이나 특정 인물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다’, ‘동료나 상사의 험담을 늘어놓지 않는다’ 등 기본적인 직장 회식 예절과 관련 일종의 수칙이 담겨 있다.

‘과음하거나 자기의 지식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는다’, ‘술자리를 자기의 자랑이나 평상시 언동의 변명자리로 만들지 않는다’와 같은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도 지켜야 할 매너로 꼽혔다. ‘연장자나 상사로부터 술을 받을 때는 두 손으로 받으며 왼손을 가볍게 술잔에 댄다’, ‘술을 따를 때는 술병의 글자가 위로 가게 오른손으로 잡고 왼손으로 받쳐 정중한 자세로 술을 따른다’ 등 한국식 주도(酒道)도 있다. 회식 내 갖춰야 할 비즈니스 매너로는 총 11가지가 소개되고 있다.

문제가 된 대목은 ‘윗사람이 권하는 술은 꼭 받아서 입술을 축이거나 받는 즉시 마시는 것이 예의’라는 문구다. 이는 직장 내 위계질서를 위해 술을 강요하는 행위로 비춰질 수 있다. 더욱이 지난달 16일 ‘직장 내 괴롭힙 금지법’이 시행된 가운데 음주 강요는 법에 저촉되는 행위로 분류된다.

‘상사와 합석한 술자리는 근무의 연장이라 생각하고 예의 바른 행동을 보인다’란 내용도 문제시되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최근 기업 내 회식이 뜸해지고 있는 데 반해, 상사와의 술자리를 근무의 연장이라고 보는 것은 구태의연한 발상으로 지적된다.

글쓴이는 “이것이야말로 없어져야 하는 술자리 악습 아니냐”며 “선진화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돼야 할 회식 자리가 윗사람들 비위 맞춰주고 근무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식 교재에 있는 건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전했다.

이어 “회사의 치부를 외부에 알리고 싶지는 않았으나 앞으로 들어올 신입사원들을 위해 공론화가 돼 앞으로는 이런 비정상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해당 글에는 30여개의 댓글이 달리며 이른바 ‘꼰대문화’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안에 대해 공항공사 측 입장을 듣고자 했으나 연락이 닿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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