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이명진 기자] 한국 바이오산업을 지칭하는 ‘K바이오’가 잇단 악재로 휘청이고 있다. 바이오헬스산업을 차세대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던 문 정부의 강력한 의지 표명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임상 실패·효능 논란 등으로 인한 허탈감은 컸고 불신의 골은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문제는 신약이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신약개발은 숙명과도 같다. 다만 신약개발에 있어 ‘임상 실패’는 병가지상사라 할 만큼 항상 붙어다닌다. 그만큼 성공 가능성은 절반이 채 안된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최근 ‘꿈의 항암제’라 불렸던 ‘펙사벡’의 임상 실패 소식은 어찌보면 단순 성장통 쯤으로 치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임상 실패 소식이 거대한 소용돌이가 돼 후폭풍을 몰고 온 이유는 무엇일까. 본질은 ‘도덕적 해이’에 있다.
앞서 지난 2016년 12월 코스닥에 상장된 신라젠은 11개월 만에 주가가 12배 넘게 폭등하며 코스닥 시가총액 2위까지 올라 소액주주·투자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코스닥 상장 후 한동안 1만원대에서 오르내리던 신라젠 주가는 지난 2017년 하반기, 펙사벡의 임상 3상 착수 관련 소식이 전해지며 연일 급등, 고공 행진을 이어갔다. 이후 그해 11월 주가는 13만1000원까지 올랐고, 시가총액은 8조7116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달 초 ‘펙사벡’이 임상시험 중단을 권고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현재 신라젠의 시가총액은 20위까지 밀려난 상태다. 문제는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기 전 문은상 대표를 포함한 특별관계자, 회사 임원들이 팔아치운 주식이 무려 2500억원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펙사벡의 경우 임상 3상을 통과하면 지분의 가치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펙사벡의 임상 중단은 이미 예상된 결과였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울러 도덕적 해이에 해당하는 오너리스크와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문 대표는 이 같은 지분 매도에 “대주주 지분율 제고를 위한 목적으로 인수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부과된 1000억원대의 세금을 납부하고, 개인 채무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 해명하며 펙사벡 3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해왔다.
특히 최근 진행된 기자 간담회를 통해서도 “먹튀나 발빼기 등은 없을 것”이라 해명하며 주주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부당 청탁 의혹 등 문 대표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꼬리를 물고 있어 그의 행보가 단지 ‘면피용’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때문에 신라젠이 내놓은 대응책에 시장의 반응 역시 싸늘할 수밖에 없다.
신약 개발은 1조원이 넘는 투자는 물론 10년 이상의 개발 기간을 필요로 한다. 그만큼 실패할 확률이 허다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다만 위기가 닥칠 때마다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가 반복된다면 소위 ‘거품 낀 바이오 기업’이란 오명은 벗기 힘들 것이다. 성과가 없는 곳에 언제까지 돈을 투자할 사람은 없다. 바닥으로 떨어진 신뢰도를 올리기엔 신약개발 만큼이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