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고은별 기자

[월요신문=고은별 기자] 예상치 못한 싸움이 터졌다. 자국의 위상을 함께 드높여도 모자랄 국제무대에서 때아닌 비방전이다. 중국·일본 등 경쟁 국가 제조사들은 아마 이 두 기업의 집안싸움을 보고 웃었을 터. 최근 LG전자와 삼성전자의 8K TV 비방전이 국외에서 국내로 넘어와 확전되는 모습이다.

‘IFA 2019’ 취재를 위한 사전 준비 과정에서 LG전자의 테크 브리핑(7일 진행)은 TV 담당 임원이 참석해 인공지능 등 제품 관련 기술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아니, 홍보팀에서 그렇게 알려왔다. 하지만 브리핑 현장 분위기는 이번 비방전이 꽤 오랜 시간부터 준비됐다는 느낌을 줬다.

독일 베를린에서 매년 열리는 IFA 무대는 세계 최대 가전쇼로 불리며 정보통신분야에 있어 ‘CES’·‘MWC’와 함께 세계 3대 전시회로 꼽힌다. 전시회 현장을 실제 가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체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규모(전시공간 약 5만평) 내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너도나도 기술력을 뽐내게 된다. 이번 IFA에는 50여개 국가에서 총 1939개 업체가 참여했다.

독기를 품었나. LG전자는 IFA 현장에서의 테크 브리핑에서 경쟁사인 삼성 TV를 공개 저격했다. 한국의 대표 ‘착한 기업’으로 불리는 기업 이미지와는 정반대된 모습이다. 현장에서 LG전자 임원은 “삼성 QLED 8K(75형) 제품은 ICDM(국제디스플레이계측위원회)의 TV 해상도 표준규격인 화질 선명도(CM) 값이 12% 수준으로, 표준(50% 이상)에 부합되지 않아 ‘리얼 8K’로 볼 수 없다”고 날선 비방을 했다. ICDM의 표준규격에 대한 공신력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 등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관련 자료도 직접 보여주면서 말이다.

사실 LG전자 입장에서는 매우 답답한 노릇일 것이 공감된다. 오죽하면 독일 화질 인증기관인 인터텍에 경쟁사의 TV 화질 선명도 조사를 의뢰했을까. 지난해부터 계속해 온 LG OLED TV 기술설명회에서 LG 측은 자발광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OLED TV의 기술 우수성을 알려왔다.

삼성 QLED TV는 패널 뒤에 QD(퀀텀닷) 시트를 대 백라이트로 구현되는 QD LCD TV일 뿐이라는 게 LG전자 측 입장이다. 물론 LG전자의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니다. OLED란 형광성 유기화합물을 기반으로 한 발광 소자의 일종으로, 백라이트가 없어도 자체 발광하는 디스플레이다. 이에 LG전자는 앞글자만 다른 삼성의 TV가 시장에서 더 잘 팔리자 발끈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삼성전자는 QD 시트의 퀀텀닷 입자가 초미세 반도체 소재로서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기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제(17일) 국내에서 연이어 진행된 LG전자와 삼성전자의 8K 기술설명회를 본 후 느낀 점은 ‘이렇게 해서 과연 남는 것이 무엇일까.’ 한 생각이다. 양사는 CM 값 측정을 통한 해상도 평가의 당위성에 대해서도 어떤 결론을 낼 수 없게끔 서로 상반된 논리를 펼쳤다. 2016년 ICDM의 회의 내용을 두고도 한 쪽에선 CM 측정 등 ICDM의 표준규격이 아직 유효하다는 의견과, 이미 실효를 잃었다는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는 등 극명한 시각 차를 나타냈다.

물론 그동안 8K TV에 대해 잘 몰랐던 소비자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제품 정보를 익히고 구매에도 이를 반영할 수 있다. LG전자도 소비자의 현명한 선택을 위해 정확한 정보를 알려야 한다고 거듭 말한다.

하지만 기술 우위를 알리는 것만이 목적은 아닐 것이다. 설명회든 뭐든 양사의 활동은 TV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고 수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다만, 비방은 비방만을 낳을 뿐 소모적인 논쟁은 관련 산업 발전에 별다른 도움이 되진 않는다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약 5년 전 양사는 IFA 기간 발생한 세탁기 파손 논란으로 지독한 갈등 끝에 법적 분쟁으로까지 이어진 바 있다. 분쟁 종결 후 앞으로 사업수행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대화와 협의를 통해 원만히 해결하기로 했다. 이를 상기하고, 상호 비방이 아닌 시장에선 제품성만으로 소비자에게 인정받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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