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이명진 기자] 삼양식품의 2대주주인 HDC가 보유 지분 전량을 매각키로 결정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삼양식품 지분인 127만9890주를 전량 시간 외 매매로 처분키로 확정한 것. 신규투자를 위한 유동성 확보와 비계열지분 처분을 통한 지주체계 강화를 위해서라는 게 이유다. 당초 HDC의 삼양식품 지분율은 16.99%로, 처분 금액은 947억1186만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자기자본의 4.48%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간 HDC는 삼양식품의 2대 주주역할을 해왔다. 앞서 삼양식품은 지난 2005년 채권단으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으며 HDC를 백기사로 끌어들인 바 있다. 선대 회장인 고(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과 고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과의 각별한 인연이 계기가 됐다. 하지만 올해 1분기, HDC가 삼양식품 오너 일가에 불리한 주주제안을 하며 서서히 양사는 균열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평이다.

당시 HDC는 주주총회 안건에서 ‘배임이나 횡령으로 금고 이상 형을 받은 이사를 결원으로 처리하자’는 내용의 정관변경 안건을 주주 제안으로 올린 바 있다. 이에 대해 삼양식품 측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확산 분위기에 맞춰 제안을 한 것일 뿐 HDC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일각에선 오랜 백기사 역할을 했던 HDC가 주주제안을 한 사실 자체가 이미 오너 일가와 등을 돌렸다는 해석이 나오곤 했다.

실제 HDC의 주주제안은 표 대결에 밀려 이뤄지지 못했지만, 해당 안건이 통과됐다면 횡령 혐의로 유죄를 받은 전인장 삼양식품 회장과 부인 김정수 사장은 이사회에 참여할 수 없게된다. 이에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전 회장을 사실상 겨냥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번 HDC의 지분 매각이 비리를 저지른 현 경영진에 대한 견제에 실패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또 한편으로는 아시아나 항공 인수전에 대비해 자금 확보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앞서 자회사 HDC 현대산업개발은 미래에셋대우와 컨소시엄을 결성해 아시아나항공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한 바 있다. 이에 이번 지분 매각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의 실탄을 마련하기 위한 사전 포석일 것이란 의견도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이번 HDC의 조치는 ‘오너 리스크’로 불거진 과거 갈등이 결정적 단초가 됐다는 지적이다. 거듭되는 오너 이슈에 14년간 이어온 백기사 인연도 결국 초라한 마침표를 찍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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