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남북전이 열린 평양 김일성경기장/사진=뉴시스

[월요신문=정세진 기자] 지난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 남북전이 초유의 무관중 경기로 치러지면서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날 오후 5시30분에 있었던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H조 남북전은 이례적으로 취재진도, 중계진도 없이 진행됐다.

당초 북한 측은 경기 전날까지 4만 명 정도의 관중이 올 거라고 밝혔으나, 막상 경기를 관람한 사람은 지안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과 평양 주재 외교단, 그리고 현장 통제를 위해 관중석에 일정 간격으로 배치된 보장성원 등이 전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은 북한 당국의 돌발 행동은 정치·군사적 정세 불만을 표출하는 제스쳐로 풀이되고 있다.

남북 소강국면이 장기화된 것에 대한 무언의 항의 표시라는 것. 이전에도 북한은 사회, 문화, 스포츠를 모두 아우르는 방식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표현해 왔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 관계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소장회의 중단,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쌀 5만t 지원 수령 거부 등 급속히 냉각되는 분위기다.

북한 당국의 주장에 따르면 이는 한미 연합훈련을 계속하고, F-35A 등 '북침 전략무기'를 미국으로부터 계속 들여오는 남측 정부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 주요 언론들은 '이중적인' 남측 정부와는 마주하지 않겠다며 연일 대남 비난 공세를 펼쳐오고 있다.

이번 평양원정 경기 준비 과정에서도 장소가 확정된 이후 우리 정부는 아시아축구연맹(AFC)을 통한 채널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채널을 활용, 응원단 파견 문제와 중계·취재진 파견 문제, 그리고 서해 직항로를 이용한 선수단 이동 문제 등을 협의하려 했었다.

그러나 북한축구협회 측은 "권한이 없다"는 식으로 외면해 사실상 대화를 거부하고 나섰다.

경기 종료 후에도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평양 남북전이 '무승부'로 끝났다는 결과를 간략하게 보도했으나, 16일부터는 이마저도 인터넷 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없다.

대내 선전용 관영매체인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또한 남측 선수단 평양 방문 관련 소식을 단 한 줄도 게재하지 않았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무관중 경기는 비정상적인 남북관계의 현주소"라면서도 "북한은 정치, 군사, 사회, 문화, 스포츠를 전부 연계하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이번 축구 경기가 남북의 경기였다면 또 모르겠지만 이번 경기는 국제경기였기에 국제사회의 룰과 상식을 따라야 했다"며 "이러한 행태는 북한이 강조하고 있는 정상국가화 이미지 개선 노력에도 도움이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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