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단 “마필·영재센터 지원, 대통령 요구 때문”
손경식 CJ 회장 증인 신청…특검은 삼바 자료 제출키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2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관련 파기환송심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월요신문=고은별 기자]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2차 공판에서 이 부회장 측은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등이 ‘정치권력(박근혜 전 대통령)’에 의한 수동적 공여란 점을 강조했다.

삼성이 지원 여부를 결정할 2015년 당시 영재센터와 최순실씨와의 관계도 모르고 있었다는 입장이다. 이는 거절하기 어려운 대통령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이 부회장 측은 수동적 행위였음을 입증하기 위해 손경식 CJ 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어제(22일) 오후 2시5분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 심리로 열린 파기환송심 2차 공판에서는 특별검사팀과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의 날선 공방이 이어졌다.

특검은 대법원의 상고심 선고 결과를 토대로 “승계작업 청탁과 관련해 이 부회장이 제공한 뇌물을 유죄로 인정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8월 29일, 2심과 반대로 이 부회장이 최씨 딸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말 3마리 구입액 34억원과 영재센터 지원금 16억원 등 총 50억원을 뇌물로 판단,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부회장 측은 삼성이 영재센터를 지원한 이유에 대해 “자발적 지원이 아니었다”며 특검에 맞섰다. 승마 지원과 영재센터 지원 등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대통령의 요구에 따랐을 뿐, 자발적·적극적 지원이 아니었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피력한 것이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대통령은 기업 활동에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고 그 영향력은 강력하고 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씨의 대법원 판결도 삼성 영재센터 지원은 직권남용으로 인정한 만큼 박 전 대통령 요구 때문에 지원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부연했다.

특검은 “삼성이 처음부터 영재센터와 최씨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고 의심했으나, 삼성은 이 둘의 관계를 사전에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을 피력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대한빙상연맹 회장사였으며 평창동계올림픽 주요 후원사 중 하나였다. 변호인단은 “만약 뇌물인 줄 알았다면 대외적으로 홍보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영재센터 지원 사업계획서상 명칭사용권, 광고권 등에 삼성전자의 권리가 기재돼 있다”고 주장했다.

마필 지원과 관련해서도 변호인단은 “승마지원이 문제가 된 것은 2014년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단독면담”이었다며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삼성의 승마지원이 부진하다는 점을 두고 이 부회장을 크게 질책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피고는 승마지원을 진심으로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다”면서 “이 부분은 국민들께 깊이 사과한다”고 덧붙였다.

특검은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 현안과 관련해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상대로 한 검찰 수사 과정을 자료로 제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대로 이 부회장 측은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손경식 CJ그룹 회장, 미국의 웬델 윅스 코닝 회장 등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손 회장을 증인으로 요청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기업을 압박했다는 점을 환기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손 회장은 지난해 1월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1심에서 2013년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으로부터 박 전 대통령의 뜻이라며 이미경 CJ 부회장을 퇴진시키라는 압박을 받았다는 취지의 증언을 한 바 있다.

앞서 2심 재판부도 이 부회장의 양형과 관련해 대통령에 의한 수동적 뇌물 공여였다는 점을 감안했다. 지난달 첫 공판 뒤 “양형 심리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이 점을 재판부에 지속 피력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력에 의한 수동적 뇌물 공여였다는 점은 양형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최종 판결도 ‘피해자가 아닌 뇌물공여자’였지만 재판부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2심의 판단처럼 국가 최고 권력자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던 측면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 또한 신 회장 판결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이 부회장 등에 대한 파기환송심 2차 공판은 약 3시간가량 진행됐다. 이 부회장은 오후 5시6분경 법원청사에서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귀가했다. 이 부회장 외에도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등 삼성 관계자들이 2차 공판에 참석했다.

이 부회장 등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에게 삼성 경영권 승계 및 지배구조 개편 등을 도와달라는 청탁을 하고 그 대가로 최씨의 딸 정씨 승마훈련 비용, 영재센터, 미르·K스포츠재단 등 지원에 총 298억2535만원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제공한 출연금 204억원과 재산국외도피 혐의, 이 부회장의 국회 위증 등에 대해 무죄를 확정한 한편, 말 3마리 구입액 34억원과 영재센터 지원금 16억원 등 50억원을 뇌물로 추가 인정했다.

이로써 현재까지 뇌물로 인정된 액수는 말 사용이익(36억원)까지 더해 총 86억원이다. 뇌물은 삼성의 회삿돈이라 횡령으로 이어지는데, 현행법상 횡령액이 50억원 이상일 경우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재판부는 내달 6일 세 번째 재판을 통해 양형에 대해 심리를 진행한 뒤 이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절차를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에 대한 최종 선고는 이르면 연내 치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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