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수용압박에 배임 들어 난색…금감원, 수용결정시한 연장
당연히 배상해야 하고 고객돕는 행위를 배임으로 보기는 어려워

키코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해 8월 19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월요신문=박은경 기자]금융감독원이 ‘키코‘배상 여부를 두고 갈등하는 은행권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 조정안 수용 결정 시간을 연장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결정 시간을 연장하면서 조정안 수용을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이다. 이에 배임 우려를 앞세워 배상을 거부해온 은행권과 배상을 촉구하는 금융당국 간의 갈등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키코 분조위 조정안 결정시한이 오는 8일로 다가왔지만 조정안을 받은 은행 6곳(신한·우리·KDB산업·KEB하나·DGB대구·씨티은행) 모두 수용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은 정한 시한까지 조정이 마무리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피해 기업과 은행권에 수용 여부를 결정한 시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연말 연초 바쁜 시기를 보내느라 은행들이 키코 사안을 검토할 시간이 부족했을 수 있다”며 “내부 검토를 할 시간을 더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키코 사태가 이미 불완전판매로 결정됐음에도, 12년 간 은행권에 이끌려 다닌다는 지적이 제기 됐다.

‘키코(knock-in, knock-out)’는 2007년부터 국내 수출 기업에 집중적으로 판매된 파생상품이다.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으나 범위를 벗어나면 큰 손실을 보는 상품이다. 그러나 당시 은행들은 기업들에 키코를 판매하면서 달러의 가격이 하락해도 어느 정도 선에서 보장해 주겠다며 불완전판매를 일삼았다.  

금감원에 따르면 당시 키코 사태로 기업 738개사가 3조2247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봤으며 919개의 중소기업이 손해 또는 도산됐고 우량 중견기업들이 무너졌다. 

이에 금감원은 지난 13일 12년 만에 분조위를 열고 키코 피해 기업 중 분쟁조정을 신청한 4곳(일성하이스코·남화통상·원글로벌미디어·재영솔루텍)에 대해 은행측이 평균 23%를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조정안은 지난달 20일 양측에 통보됐으며, 양측이 20일 안에 조정안을 수락하면 조정이 성립된다. 

키코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일단은 분조위 배상 결정을 환영하는 입장을 밝혔으나, 은행권은 배임 행위에 해당된다며 배상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은행 내부에서는 일부 “왜 우리가 피해를 배상해야 하느냐”는 의견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에서는 키코 사태가 피해 기업 손해 배상 청구권의 민법상 소멸 시효인 10년이 지난 상태이기에 배상의무가 없다는 주장이다. 법적인 배상의무가 없어 자칫 주주들로부터 배임 논란이 벌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금감원은 배임 우려를 앞세워 배상을 거부하는 은행권에 “로펌 5곳에 확인한 결과, 배임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키코 공대위 또한 키코 사태의 소멸시효가 끝나 배상 의무가 없다는 은행권의 주장에 소멸시효를 계산하는 기준을 계약 체결일로 봐야할 지, 계약 종료일로 봐야할 지 다툴 필요가 있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키코 피해 기업들이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적시효는 계약 체결일로부터 10년 또는 기업이 문제를 인지한 시점으로부터 3년 이내다. 

키코 공대위 관계자는 “소멸시효는 일시적 계약에 대한 것일 뿐, 계속적 계약에 대해선 법 조항이 없다“며 “최근에는 계약기간이 10년인 데다 키코와 비슷한 상품인 TRF(Target Risk Fund)와 관련해 시효를 계산하는 기준을 계약체결 종료일로 본 판결이 나온 바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달 23일에는 윤석헌 금감원장 또한 배임우려에 난색을 표하는 은행권에 “외환파생상품 키코와 관련해 일부 은행에서 배임 이야기가 나오는데 고객을 도와주는 경영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배임이라고 할 것은 없지 않나“라며 은행권의 조정안 수용을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만일 은행권이 조정안을 불수용해 피해 기업과 민사소송으로 이어질 경우 소멸시효에 따라 판결이 결정되면 배상이 어려워진다. 현재로써 피해기업들은 은행권의 조정안 수용이 최선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경우 대규모 원금손실을 부른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의 피해 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선만큼 키코 배상에도 상대적으로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단, 이들 두 은행 역시 배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이 마저도 불투명하다.

은행들은 키코 분쟁조정 안건을 이사회에 올려 수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기업들은 키코 사태의 배상을 받을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는 점에서 조정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현재 금감원에 수용 의사를 밝힌 기업은 1곳이다.

조정안이 성립되면, 향후 분쟁조정 신청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키코 피해 기업’에 대해한 피해배상도 은행과 협의해 자율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금융당국이 키코 사태의 분조위 조정안 수용을 두고 은행권을 압박하는 가운데, 12년 만에 키코 배상이 이뤄질 수 있을지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