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전문성 문제 뿐아니라 정권 ‘꼭두각시’ 전락 우려에 출근 막아
문재인정부의 ‘내로남불’…“대선공약 내건 ‘낙하산 인사’ 근절 지켜야”

IBK기업은행 노조가 3일 오전 서울 중구 본점에 출근하는 윤종원 신임 기업은행장의 출근을 저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월요신문=박은경 기자] IBK기업은행장으로 임명된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낙하산 인사’ 논란으로 노조의 거센반발에 밀려 본점으로 출근하지 못하고 인근에 사무실을 얻어 집무를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노조는 낙하산 행장이 전문성에서 문제가 많아 은행발전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는 물론이려니와 최악의 경우 그가 ‘꼭두각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사코 은행출근을 저지하고 있다.

7일 한국노총 산하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IBK기업은행지부 노조원들이 서울 을지로 본점에서 출근을 저지하는 바람에 윤행장은 2~3분 만에 발길을 임시 집무실로 돌려야했다.

노조는 “관료 출신 낙하산 인사는 과거 박근혜·이명박 정부와 다를 바 없는 반노동적·반민주적 행태”라며 “2013년 기업은행장으로 기획재정부 관료가 내정됐을 때, 관치는 독극물이라고 주장했던 민주당이 이번 낙하산 인사에는 침묵하고 있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반발했다.

기업은행 노조가 청와대의 ‘내로남불’ 격인 낙하산 인사를 비판하는 근거는 박근혜 정부 시절 민주당과 문재인대통령의 발언에 있다.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도 야당 대표 시절 ‘기업은행 만큼은 외부인사를 임명해선 안 된다’라고 했고,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 기업은행장 임명에 반대해 함께 싸워왔던 세력”이라고 말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장은 금융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기업은행은 지난 2010년부터 3차례에 걸쳐 내부 직원이 승진을 통해 행장에 올랐으며, 그에 따른 경영성과도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과거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 인사 관행을 앞장서서 비판했던 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이 신임 행장 인사를 두고 과거의 낙하산 관행을 부활시켰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가 허경욱 전 기재부 차관을 기업은행장으로 임명하려 하자 당시 민주당 정무위원들은 성명서를 내고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내부인사 출신을 내치고, 모피아를 낙하산으로 보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중소기업은행장의 모피아 낙하산 인사 계획을 하루빨리 단념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며 이를 앞장서 비판했다.

이어 민주당은 2016년에도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기업은행장으로 보내려는 시도에 반발하며 전문성 없는 금융기관 임원 선임을 제한하는 ‘낙하산 방지법’까지 발의한 바 있다.

노조는 “민주당이 집권 세력이 되자 스스로 원칙을 무너뜨린 것”이라며 힐난했다.

청와대는 행시 출신인 윤 행장을 둘러싼 낙하산 인사 논란에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분들은 우리 정부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하는 분”이라고 해명했지만 이 같은 해명은 오히려 논란을 확대시켰다. 청와대가 입맛에 맞는 사람을 ‘꼭두각시’로 앉힌다는 불씨만 키운 셈이다.

청와대 출신 인사는 정부의 국정철학은 잘 이해할 수밖에 없지만 기업은행 내부 사정과 전문성을 갖추었는지 여부에는 의문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더욱이 청와대는 10년간 내부 승진으로 잘 운영해오던 기업은행에 왜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 관료를 임명해야 했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답변을 제출하지 않았다.

기업은행 노조 관계자는 “기업은행은 지난 9년, 3기에 걸쳐 내부 출신 행장을 배출해왔다”라며 “내·외부 인사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현 시점에서 내부 분위기를 모르는 낙하산 행장이 왔을 때 갖게 될 리스크는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 또한 “선거를 통해 집권하면 결국 정부 기관을 통해 통치를 해야 한다. 집권한 청와대가 국정철학을 이해하는 장관과 공공기관장을 임명함으로써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성이 없는 낙하산 인사가 논란이 되는 것은 정권으로부터 독립되지 못하고 속된 말로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게 된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는 지난 사례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임명된 홍기택 산업은행장은 분식회계 등으로 위기에 빠진 대우조선해양에 공적자금 4조 2천억 원을 지원했는데, 여기에 청와대가 연루돼 논란이 일었다. 당시 홍기택 행장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임종룡 금융위원장,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자금 지원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폭로했다.

반면 윤 행장은 지속되는 노조의 강경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조와 대화를 시도하며 임시 집무실을 마련하고 본점 출근을 시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일각에서는 노조와 윤 행장의 대치상태가 지속될 경우 피해는 은행이 고스란히 입게 돼, 현실적으로 임명 철회는 어렵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전문 연구기관 관계자는 “윤 행장 개인의 능력에 대한 게 아니라 내부 출신이 아니라는 데 대한 노조의 반발이라 동력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며 “국책은행장이 임명될 때마다 의례 있었던 일이고, 주도권 싸움이므로 노조가 실리를 챙기는 선에서 합의점을 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윤 신임 행장은 인창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행정학 석사와 미국 UCLA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이후 1983년 행정고시 27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특명전권대사, 연금기금관리위원회 의장 등을 거쳐 지난 2018년 6월부터 작년 6월까지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