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재 회장, 업계 최초 연공서열제 탈피 선언…노조 “공정한 평가 위한 세부 협상 필요”

교보생명 광화문 본사 사옥 / 사진=교보생명

[월요신문=박은경 기자]교보생명 신창재 회장이 근속 년 수에 따라 급여가 결정되는 연공서열제를 파괴하고 직무의 난이도 등에 따라 급여가 결정되는 직무급제 도입을 발표했으나 노조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서 곤혹을 치르고 있다. 

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교보생명 노동조합은 직무급제 도입으로 인해 지난 1일자 하위직무로 인사발령이 난 79명에 대한 이의신청을 7일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상위직무로 이동한 직원은 81명이다. 이의신청은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신청해야한다.

앞서 교보생명은 지난 2일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직무급제를 본격 시행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직무급제란 연차가 아닌 직무에 따라 임금을 산정하는 제도로 중요도와 난이도, 업무 성격과 책임 정도 등에 따라 급여가 달라진다.    

일례로 입사 3년차 사원(A직급)의 기본급이 4000만원(성과급 제외)이면 이 중 60만원을 직무급으로 분리한다. 해당 직원이 A직급 직무를 맡으면 그대로 60만원을 받고, SA(대리)직무를 하면 120만원, M1(지점장)직무를 하면 264만원을 받는 식이다. M1 직무를 수행하는 경우 연봉은 4204만원으로 오른다.

그러나 노조 측은 직무급제 도입을 두고 운영체계에 대한 세부적인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노조는 직무급제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닌 어설픈 직무급제가 도입돼 부작용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인사이동 불이익 초래, 직무순환 활성화 저해 우려, 적절한 인사 배치 등 정확한 직무급제도 커뮤니케이션이 선행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특히 노조는 직무급제가 직무 난이도 등의 평가에 따라 급여가 좌우되는 만큼 공정한 평가를 위해 구체적인 협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직무급제가 효율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직무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직무평가를 하는 게 핵심이지만, 교보생명 측이 세부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홍구 노조위원장은 “직무급제 도입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직무 난이도 등에 대한 공정한 평가, 조직에 맞는 직무등급별 TO가 중요한데 관련 자료를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교보생명은 노조의 반발이 이어지자 지난 3~7일 현 직무등급보다 낮거나 높은 등급으로 인사가 난 직원을 대상으로 이의신청을 받은 데 이어, 전 직원에 ‘언론접촉 금지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안팎으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교보생명 관계자는 “직무급제 도입 관련 자문 및 준비에 6~7년이 걸렸고, 지난해 1월 노사 간 합의를 통해 실행하기로 한 바 있어 일방적 강행일 수가 없다”며 “직무변동에 따른 심의위원회 설치 등 제도적 장치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갈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신창재 대산문화재단 이사장·교보생명 회장/사진=뉴시스

보험업계에서는 노조의 우려와 달리 신창재 회장의 연공서열 철밥통 깨트리기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같은 직급이라 하더라도 어떠한 업무를 하느냐에 따라서 그 강도와 성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데 급여가 동일하다면 이는 역차별일 수도 있다”며 “저금리 기조 장기화로 보험업계가 제로성장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혁신은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노조 측은 여전히 사측이 노조와 협의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홍구 교보생명 노조위원장은 지난 6일 "사측이 직무급제와 관련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노조와 상의하지 않은 채 언론에 알리고, 시행을 강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지난 3일 이와 관련 관련해 대통령자문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중재요청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보생명이 직무급제 시행을 두고 노조와 밥그릇 싸움이 치열한 가운데, 신창재 회장이 ‘철밥통 연공서열제 ’를 탈피하고 직무급제로 효율적인 운영을 이뤄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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