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중소 건설사, 법정관리에 폐업 신청 줄이어
전국 각지서 신규 수주 줄고 시공사 유찰 이어져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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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신문=김지원 기자]건설업계가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형국으로, 신규 수주는 줄고 중소-중견 업체들의 폐업 신청만 늘고 있다. '4월 위기설' 현실화에 대한 업계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워크아웃 진행 중인 태영건설이 자본잠식으로 인해 주식거래가 정지되면서 '건설업계 4월 위기설'에 다시금 불이 붙기 시작했다. 

태영건설은 지난 13일 작년 말 연결회계 기준으로 자본 총계가 마이너스 5626억원으로 자본잠식 상태라고 공시했다.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자 거래중지는 물론 3월 중 외부감사인의 감사의견에 따라 상장폐지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산업은행이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사업장 처리안 마감이 늦어진 것을 고려해 다음달 11일로 예정된 태영건설의 기업개선계획 결의 기한을 한 달 후로 연장하기로 하면서 워크아웃 절차 지연에 대한 우려가 증폭됐다.

산업은행 측은 워크아웃 진행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표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워크아웃 진행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것"이며 "태영건설이 자본잠식과 이에 따른 거래정지,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돼도 워크아웃의 정상적인 진행에는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시공능력평가 순위 100위권 밖 중소·중견업체들 사이에선 건설업 위기가 이미 현실화 되고 있다.

자금난을 견디다 못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시공순위 105위인 호남 기반의 새천년종합건설은 지난달 말 서울회생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법원공고에 따르면 선원건설·송학건설·세움건설 등 지방 중견 건설사 7곳도 법정관리 신청 후 포괄적 금지명령을 받았다.

중소건설사들의 줄폐업도 이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1월 1일부터 3월 13일까지 건설사(종합·전문) 자진폐업 신고 건수는 약 844건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11.4건으로 전년 동기(751건) 대비 11% 가량 늘었다.

올해 폐업신고는 같은 기간(1월 1일~3월 13일) 기준 10년만에 최대치다. 매년 1월 1일부터 3월 13일까지 폐업신고를 보면 지난해 700건대를 넘어섰고, 올해에는 800건대를 돌파했다.

상황이 개선될 기미도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 올 1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3755가구로 2개월 연속 증가했다. 아파트 분양사업은 대체로 건설사가 금융권에서 PF대출을 받아 착공하고 이후에 분양할 때 받은 대금으로 대출을 갚는 방식인 것을 고려했을 때 미분양이 증가함에 따라 PF대출을 갚지 못하는 건설사가 더 늘어날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주택사업 경기는 악화할 것으로 전망됐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이달 전국 주택사업경기전망지수는 전월대비 2.7포인트(p) 하락한 64.0으로 집계됐다.

주택사업경기전망지수는 주택 사업자가 경기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지표다. '0~85 미만'은 하강 국면으로, '85~115 미만'은 보합 국면으로, '115~200 미만'은 상승 국면으로 각각 해석한다.

이달 전국 자재수급지수는 전월보다 6.4p 하락한 81.6으로, 자금조달지수는 전월대비 7.7p 떨어진 58.4로 각각 나타났다. 이는 주택사업자가 자재수급도 자금조달도 원활하지 못하다고 평가한 것으로 주택 경기가 침체되는 와중에 원자잿값, 인건비, 금리 등이 치솟고 부동산 PF위기로 돈줄이 막히자 건설업계 내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주택사업 경기가 침체한 가운데 사업자가 느끼는 원자재 가격 부담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며 "유동성 문제·고금리 등 악화한 자금 시장 여건이 지속되는 가운데, 사업자가 느끼는 자금 시장 불안정성에 따른 위기감이 악화했다"고 말했다.

불황에 위축된 건설업계...현장 곳곳서 공사비 갈등

지난해 말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촉발된 부동산 PF 위기설은 올해 들어 상황이 개선되지 못하자 더욱 심화되고 있다. 특히 상당수 건설사들이 올해 수주목표액을 전년 대비 낮추고 신규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 등 몸 사리기에 들어갔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월 국내 건설업 신규 수주액은 8조5639억원으로 1년 전 기록한 18조4721억원보다 10조원이나 줄었다. 감소폭으로 따지면 53.6% 줄어든 수치이며, 지난 2010년 10월 기록한 58.9% 이후 13년 만에 가장 낙폭이 컸다.

결국 이전에 주택사업에 매진했던 건설사들이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손을 떼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인 송파 가락삼익맨숀, 서초 신반포 27차 아파트, 잠실 우성 4차 아파트 등은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가 없어 시공사 선정에서 유찰을 겪고 있고 상계주공5단지, 부산 괴정5구역 등 강남 외 일부 재건축 단지들은 시공사를 선정해도 공사비 갈등으로 계약을 해지하는 사업장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건설업계는 치솟는 공사비 상승을 감당하면서까지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수익성 낮아진 사업을 추진하지 않으려는 시공사와 급증한 공사비를 부담할 수 없는 조합 간의 갈등은 더 커질 전망이다.

실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1월(118.30) 대비 올해 1월(154.64) 건설공사비지수는 30.7% 상승했다. 지난해 12월(153.22)에 비해서는 0.93% 올랐다. 건설공사비지수는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재료, 노무, 장비 등의 가격 변동을 나타낸다.

지난  10월 31일 쌍용건설의 시위 현장. 사진=쌍용건설.
지난해 10월 31일 쌍용건설의 시위 현장. 사진=쌍용건설.

공사비 갈등은 최근 주택사업을 넘어 사기업이 발주한 공사와 공공공사까지 확산됐다. 지난해 10월 공사비 171억 증액을 요구하며 KT 판교 신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였던 쌍용건설은 지난 12일 2차 시위를 예고했다가 KT가 협상에 나서면서 일정을 연기했다.

대보건설은 이달 초 LH와의 공사비 협상이 진행되지 않고 있음을 밝히며 공사를 중단했다. 대보건설은 공사 기간을 단축해 달라는 LH의 요청에 따라 공사를 진행했다가 300억원 이상 손실을 감내했다며 LH에게 공사비 증액을 요구한 바 있다.

앞서 대보건설은 지난해 10월 공사를 중단했다가 LH가 일단 공사를 진행하면 협상을 진행하겠다고 약속해 공사를 다시 진행했다. 그러나 이후 협상이 이뤄지지 않자 공사재개 5개월만에 다시 공사를 중단했다. 세종 공동 캠퍼스는 올해 9월 개교 예정이었으나 내년 3월로 일정이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가이드라인이 없어 공사비 갈등이 악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토부가 공사비 갈등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겠다는 언급이 있었지만 아직 진전이 없는 것 같다"며 "명확한 가이드나 해법을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총선 이후 PF만기도래 예정...'4월 위기설' 불붙여 

업계에서는 오는 4월 총선을 기점으로 부동산발 신용위기가 불거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고금리 상황 속에서 부동산 PF 대출 만기 시기가 몰려 있고, 특히 올해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가 평년보다 커 줄도산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부동산 PF 시장 저하로 금융기관의 PF 연체율이 상승하고 PF 사업장의 부실 우려가 확대된다"며 "부동산 PF의 질서 있는 연착륙을 위해 PF 사업장의 개별 평가 중요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부동산 PF는 약 134조원에 달한다. 금융권 PF 대출 연체율은 2022년 1.19%에서 지난해 3분기 2.42%로 증가했다. 저축은행 PF 대출 연체율은 같은 기간 2.05%에서 5.56%로 늘었다.

다만, 과도한 우려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은형 연구위원은 "'4월 위기설'은 예견된 위기이고, 예견된 위기가 현실화한 적은 거의 없다"며 "지난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전까지 호경기였던 시장 상황 속에서 과도하게 사업을 확대하거나 리스크 관리를 충분히 하지 못한 건설사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이를 업계 전체에 대한 위기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뉴시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뉴시스

금융당국은 '4월 위기설'과 관련해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금융감독원 이복현 원장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시스템적으로 어떤 쏠림으로 인해 경제 주체 전체에 대한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라고 하면 '4월 위기설'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일축했다.

국토교통부는 간담회를 열고 부동산 PF시장 연착륙을 위한 공적보증 확대와 공사비 상승으로 인한 공공공사 유찰 및 민간공사 공사비 분쟁 등 해결방안을 논의하며 위기설 진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방침이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 미분양이 증가하는 등 주택 분야에서 애로사항이 크게 발생하고 있다"며 "글로벌 현상이긴 하지만 건설업 부문에서 시공 단가가 굉장히 많이 올랐다"고 밝혔다.

그는 "철근값부터 시작해서 5년 동안 30% 이상 상승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건설사들의 체감은 더 클 듯하다"며 "여전히 규제가 많이 남아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 삼중고로 표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 같은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재정을 조기 집행하고,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 주택 건설 규제를 걷어내려고 하고 있다"며 "건설 활력 회복과 PF 연착륙을 위한 지원 방안을 관계 부처와 함께 적극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우려가 전혀 과도한 것이 아닌 건설업계의 실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업계의 위기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건설사가 앓는 소리를 해도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정말 건설 경기가 어렵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러다 모두 파산하는 거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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