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하는 ‘마르크 샤갈 특별전’을 관람했다. 관람객이 너무 많아서 작품을 조용하게 감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김춘수 시인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김춘수 시인은 샤갈의 작품 ‘나와 마을’을 보고 이 시를 썼다고 한다.

우리 한국의 시인이 왜 샤갈의 고향 마을을 노래한 것일까?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에 3월의 눈이 흩날리는데, 봄을 기다리는 한 사나이가 그 눈을 맞으며 서 있다. 그리고 시의 마지막 연은 아낙들이 아궁이에 아름다운 불을 지핀다는 구절로 마무리되고 있다. 여인들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모습은 우리 한국의 고향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정겨운 풍경이 아닌가? 여기에서 샤갈의 고향 마을은 우리에게 한국인의 고향 마을과 오버랩되어 다가온다.

샤갈은 1887년 러시아제국의 작은 도시 비텝스크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유대인인 그는 러시아, 독일, 프랑스, 미국 등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살아야 했다. 그는 고향을 떠나 평생 이주민 나그네로 살았으면서도 자기는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샤갈의 고향 마을은 그의 모든 예술작품 속에 항상 진하게 녹아 있는 것이다.

샤갈이 살았던 20세기 유럽은 참으로 험난한 시대였다. 그는 유대인 예술가로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1917년 러시아 혁명,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다. 나치 독일제국이 유대인들에게 자행한 박해와 학살은 얼마나 참혹했던가? 그래서 샤갈의 환상적인 예술작품이 보여주는 그의 고향 마을은 바로 사랑과 평화의 마을이다. “우리의 삶에는 오직 한 가지의 색채만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색채’다.”

이스라엘 민족의 간절한 소망은 역사적으로 이집트 제국, 바벨론 제국, 로마제국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 엑소더스(Exodus)였다. 유대인들은 세계에 흩어져서 온갖 차별 대우를 받으며 살면서 그들의 뿌리인 고향 마을을 얼마나 그리워했겠는가? 샤갈의 작품에는 사랑과 평화의 마을 고향을 그리워하는 메시지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벨라루스로 피신하는 뉴스와 함께 우리는 벨라루스라는 나라 이름을 자주 듣게 되었다. 그런데 지난 봄 벨라루스 유학생 한 명이 우리 한국어 교실을 찾아왔다. 사회통합프로그램 사전평가를 준비하기 위해서 한국어 교실을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이번 샤갈의 특별전 전시를 보면서 나는 샤갈의 고향 마을이 바로 벨라루스의 비텝스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폴란드,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하는 나라 벨라루스, 바로 거기에 샤갈의 고향 마을이 있지 않은가?

김춘수 시인은 샤갈의 고향 마을에서 우리나라의 고향 마을 ‘사랑과 평화의 마을’을 본 것이다. 시의 첫 구절은 봄이 와야 할 시기에 아직 차가운 눈이 내린다고 시작되지만, 시의 마지막 구절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따뜻한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화가 샤갈에게 고향 마을에 사랑과 평화의 따뜻한 불을 지피는 어머니가 있었던 것처럼 시인 김춘수에게도 고향 마을에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평화의 손길이 있었다.

우리 민족 역시 1894년 청일전쟁, 1905년 러일전쟁, 1910년 일제 강점, 1919년 3.1운동, 1941년 태평양 전쟁, 그리고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실로 참담한 수난의 역사를 겪었다. 일본제국의 식민지 통치로 혹독한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우리 민족은 자유와 해방, 사랑과 평화의 마을을 절절하게 갈망하였다. 샤갈의 마을은 사랑과 평화를 갈망하는 모든 현대인들의 고향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구촌 곳곳에서 한반도를 찾아온 외국인 이주민들과 함께 사랑과 평화의 마을, 샤갈의 마을을 간절히 열망하는 것이다. / 유원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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