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는 왜 우리 한국 국민에게 헐버트를 하루도 잊지 말라고 당부했을까?

1886년 육영공원 교사로 조선에 입국한 헐버트는 한국인의 근대식 교육을 위해 매진하였으며, 한글을 비롯하여 금속활자, 거북선 등 세계 제일의 창의적인 발명품을 만든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발견하고 저술과 강연 등을 통해 이를 세계에 알리기에 힘썼다.

그러나 조선은 1895년 을미사변, 1904년 러일전쟁을 겪으며,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제에게 주권을 유린당하고 말았다.

이때 헐버트는 대한제국 황제 고종의 밀사로서 일본 제국의 불법적인 조선 침략행위를 국제사회에 고발하고 외교적인 도움을 얻고자 헌신하였다.

헐버트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나라 조선이 몰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1906년 <대한제국멸망사>를 썼다.

그는 우리 민족의 창의성과 우수성을 예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단점과 수치스러운 과오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특히 그는 우리 국민들의 무지와 빈곤, 거짓과 위선, 관리들의 부정부패, 권력자들의 당파 싸움 등 조선의 사회와 역사를 깊이 있게 통찰하였다.

한국인은 세계 최초로 거북선을 발명했지만,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자 철갑선을 남부 해안에 녹슨 채로 방치하였다. 한글이 노예해방이나 다름없는 ‘문맹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왔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500년 동안이나 한글을 무시하고, 한자를 한국의 공식 문자로 숭상해 왔다. 한민족이 그토록 놀라운 발명품들을 사장시켰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런데도 헐버트는 우리 민족을 믿고, 우리 민족을 사랑했다. 그러니 우리가 그를 어찌 하루라도 잊을 수 있겠는가?

다음은 그가 쓴 <대한제국멸망사> 헌사의 일부이다.

“지금은 자신의 역사가 그 종말을 고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지만, 장차 이 민족의 정기가 깨어나면 ‘잠이란 죽음의 가상이기는 하나’ 죽음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게 될 대한제국의 국민에게 이 책을 드립니다.” ‘잠은 죽음이 아니다!’ 헐버트는 우리 민족에게 용기와 희망을 갖도록 격려하며, 우리 민족이 독립을 넘어 인류 역사에 이바지할 고귀한 민족임을 일깨우고 있다.

일본 제국의 식민지 굴레에서 벗어난 한국 대통령 이승만의 초청으로 헐버트는 1949년 40년 만에 한국에 방문하게 되었다. 63년 전 23살 청년 헐버트가 조선을 향해 갈 때의 항로를 따라 86세의 노인이 되어 다시 해방된 나라 한국을 찾아가는 헐버트의 여정이 얼마나 아름다운 역사의 드라마인가?

헐버트는 <스프링필드유니온>에 우리 한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민족인 이유 다섯 가지를 썼다.

첫째, 한민족은 보통 사람도 1주일이면 터득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문자인 한글을 창제하였다.

둘째, 한민족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 전함으로 일본군을 격파하여 세계 해군 역사를 빛나게 했다.

셋째, 한민족은 역사기록청을 만들어 국사를 편견 없이 적도록 하고, 3년마다 기록을 정리해서 3부씩 책을 만들어 각기 다른 장소에 보관토록 했다. 이런 기록문화는 세계사에서 한민족에게 유일하다.

넷째, 한민족은 세계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이민족 흡수 문화’를 보여 주었다. 기원전 1122년 중국에서 기자가 5천 명의 중국인을 이끌고 넘어왔을 때 한민족은 그들을 토착화하여 한민족으로 삼았다.

다섯째, 헐버트가 가장 고귀한 가치로 여긴 것은 1919년 3.1혁명 때 보여 준 한민족의 충성심이다. 비폭력 운동으로 전개된 만세 항쟁은 한민족이 위대한 민족임을 증명하였다. 3.1혁명은 세계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애국심의 본보기인 것이다.

헐버트는 멸망하는 대한제국을 보면서도 한민족이 장차 세계 속에 우뚝 서리라고 예언하였다.

“역사가가 미래에 생길 일을 예단하려 해서는 안 되지만, 한민족이 장차 경이적인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라는 예단은 허용돼야 한다.” 헐버트는 우리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뜨거운 믿음과 사랑으로 오늘 우리 민족의 독립과 번영을 미리 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 유원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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